같은 출발선, 다른 결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던지는 질문

by Robin 임봉규




출발선은 같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쪽은 먼저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결승선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 장면은 우연이 아니라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노갈레스는 원래 하나의 도시였습니다.

같은 하늘, 같은 태양, 같은 언어, 같은 조상이었습니다.

다만 국경선 하나가 그어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쪽은 안정된 중산층 도시가 되었고, 멕시코 쪽은 범죄와 부패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 차이를 민족이나 문화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남한과 북한도 다르지 않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남과 북은 같은 나라였습니다.

언어도 같았고, 역사도 같았고, 가족도 섞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산업 기반은 오히려 북한이 더 튼튼했습니다.

수력발전, 중공업, 화학공업, 제철 설비가 북쪽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방 이후 20~30년 동안은 북한이 남한보다 앞서 있거나 최소한 비슷했습니다.

전기도 더 안정적이었고, 공장도 더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북한이 더 잘산다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출발선에서만 보면 북쪽이 선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남한은 세계 10위권 경제국가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밤에 불이 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쪽은 반도체를 수출하고, 한쪽은 식량을 걱정합니다.

이 극단적 격차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도의 누적 결과입니다.


이 장면을 가장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입니다.

저자는 다론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입니다.

2012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국가는 자원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문화 때문에 흥하지도 않습니다.

제도 때문에 살아남고, 제도 때문에 무너집니다.


미국은 포용적 제도를 선택했습니다.

사유재산을 보호했습니다.

법치를 세웠습니다.

기회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움직였습니다.


멕시코는 오랫동안 권력이 경제를 눌렀습니다.

부패가 구조가 되었습니다.

연줄이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포기했습니다.


남한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기업을 살렸습니다.

교육에 투자했습니다.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신호를 줬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버텼습니다.


북한은 국가가 모든 것을 쥐었습니다.

시장도, 직업도, 이동도 통제했습니다.

노력과 보상의 연결선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굳었습니다.


처음에는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한이 잘나가 보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때 남한은 쌀이 부족했습니다.

그때 북한은 남한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정직했습니다.

10년이 지나자 체감 차이가 났습니다.

20년이 지나자 격차가 보였습니다.

30년이 지나자 되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문명 차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도의 무서움입니다.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서히,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삶을 바꿉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사람을 바꿉니다.


우리는 종종 가난을 개인 책임으로 돌립니다.

노력을 안 해서라고 말합니다.

의지가 약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국경을 넘는 순간 인생이 바뀌는 현실을 보면

그 말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납니다.


국가는 추상 개념이 아닙니다.

제도의 집합체입니다.

그리고 그 제도는 매일 개인의 인생을 설계합니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온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제도의 선택 결과입니다.

포용을 택했고, 개방을 택했고, 경쟁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도도 늙습니다.

특권도 굳습니다.

문도 닫힙니다.

그러면 다시 출발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미국과 멕시코, 남한과 북한의 사례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출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가 인생을 가른다는 질문입니다.


국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실패하게 만드는 제도가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