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의 정체

by Robin 임봉규


방송 시상식에서 연예인이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이 영광을 부모님께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자동차 프로그램에서도 “이 모델은 2,000cc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두 문장은 모두 말하는 사람이 이미 알고 있고 이미 결정한 사실임에도, 굳이 직접 표현하지 않고 한 번 더 감싸서 말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말투에서 막연한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이 문장들의 의미는 매우 단순합니다.

“전하고 싶습니다”는 “전합니다”이며,

“보시면 되겠습니다”는 “입니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형을 덧붙이는 이유는, 말하는 주체와 판단의 책임을 흐리려는 언어 습관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법은 조선시대 관료 언어와 유교적 위계 문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기고, 돌려 말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 방식이 더 이상 배려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정과 판단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구조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차는 2,000cc입니다”라고 말하면 정보에 대한 책임이 화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2,000cc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판단의 책임이 청자에게 이동합니다.

이는 공손함이 아니라 의사 표현의 약화이며, 책임 회피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간접 표현이 굳어진 데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위계 중심 사회 구조입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직접 말하지 않는 방식이 미덕처럼 학습되었습니다.


둘째, 집단 조화 우선 문화입니다.

사실의 정확성보다 관계의 안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언어를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셋째,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조직 환경입니다.

단정적으로 말할수록 실패의 책임을 홀로 떠안게 되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애매한 표현을 안전한 선택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넷째, 미디어와 교육이 함께 만든 모방 구조입니다.

방송, 광고, 공공기관 안내문에서 간접화 표현이 반복되면서, 대중은 이를 ‘공식적이고 공손한 말투’로 오인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학교 언어교육이 이를 비판적으로 걸러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보다 미디어를 통해 화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매체의 표현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표준처럼 굳어졌습니다.


여기에 한국어 특유의 사물 존대 표현이 더해지면서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비가 오시겠습니다”, “기계가 고장 나셨습니다” 같은 말은 존대의 대상을 흐리며, 언어 논리를 약화시켰습니다.

이 습관은 방송 언어로 확대되며 사실 전달보다 완곡 표현이 우선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말버릇은 겸손이나 예의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책임을 감추는 언어의 가면에 가깝습니다.

말은 사고의 틀이며, 사고는 사회의 기준을 만듭니다.

주체를 숨기는 말은 책임을 숨기는 문화를 낳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전하고 싶습니다”가 아니라 “전합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보시면 되겠습니다”가 아니라 “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정확하고, 더 정직하며, 더 성숙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