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노래가 되었던 이야기

by Robin 임봉규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시절입니다.

아버지가 정기구독으로 사주시던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였습니다.

당시 집 책장에는 늘 리더스다이제스트가 꽂혀 있었고,

저는 그 잡지를 비교적 성실하게 읽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짧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형기를 마친 죄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중학생이던 제게도 그 이야기는 묘하게 마음을 붙잡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속 남자는 종착지가 아닌,

노선 중간의 작은 정류장에서 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 정류장은 그냥 지나쳐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소를 앞두고 아내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냅니다.

“내가 돌아와도 괜찮다면

마을 입구 정류장 옆 늙은 참나무에 노란 리본 하나만 묶어 달라.”

“아무것도 없다면

나는 그냥 지나가겠다.”

그 짧은 문장은 변명도, 호소도 없었습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 대신,

머물 수 있는지 묻는 최소한의 신호만 담겨 있었습니다.


버스가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는 남자 혼자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버스 안의 승객들 모두가 그 사연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창가 쪽으로 시선을 모읍니다.


리본이 있을지,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지,

사람들은 말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입니다.


남자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리본이 없는 풍경을 직접 확인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선택을 끝냈고,

이제 남은 것은 결과뿐입니다.


마침내 마을 입구가 다가옵니다.

정류장 표지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커다란 참나무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버스 안에서는 동시에 숨을 삼키는 기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곧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참나무에는 리본 하나가 아니라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습니다.

가지마다, 줄기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색이 가득합니다.

그 숫자는 설명도, 해석도 필요 없을 만큼 분명합니다.


버스 안은 순식간에 술렁입니다.

누군가 먼저 손뼉을 치고,

이내 환호와 박수가 이어집니다.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창밖의 참나무를 한동안 바라봅니다.


버스는 그 정류장에서 속도를 줄입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나옵니다.

승객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서 버스 문 앞으로 걸어갑니다.


이곳은 원래 내려야 할 곳이 아니라,

내릴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던 곳입니다.

문이 열리고,

그는 박수와 환호 속에 버스에서 내립니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지만,

마을 입구의 참나무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70년대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실리며 널리 읽혔고,

얼마후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노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그 노래의 가사를 들으며,

중학교 시절 책장에서 읽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제게 유행가가 아니라 기억입니다.

아버지가 사주신 잡지,

버스 안에서 함께 숨을 죽이던 승객들,

그리고 노란 리본으로 가득 찼던 참나무의 장면이

멜로디와 함께 다시 떠오릅니다.


어떤 이야기는 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을 건너 노래가 되고,

그 노래는 다시 한 사람의 기억 속으로 돌아옵니다.

중학교 시절, 리더스다이제스트의 한 페이지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