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가을, 노량진이다.
그전까진, 진짜 진짜 지옥 같은 일상을 살았다.
일산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로 일하며, 좁디좁은 창문 없는 고시텔과 병원을 햄스터처럼 쳇바퀴만 돌았다.
방 안은 숨 막히도록 답답했고, 샤워 후엔 습기가 가득해 피부는 뒤집어지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수간호사쌤의 애원에 3개월을 더 버텼다.
정신이 쪽쪽 빨려 나가는 것 같았다.
병원엔 불편한 사람 투성이다.
그 불편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결국 2년 차가 됐을 때 번아웃이 확 덮쳤다.
“더는 못 버티겠다.”
나는 부모님 모시고 유럽여행을 결심했다.
근데, 운명의 시작이랄까?
여행 일정이 미뤄지면서, 전혀 예상 못 한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일단 그 남자는 토기가 아니었다.
그저 붙임성 좋은 효도 여행객 중 한 명일 뿐.
몇 없는 젊은 사람끼리 여행 내내 붙어 다녔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그가 남자친구를 소개해준다며 세 명을 보여줬다.
연상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나보다 나이 많은 한 명을 골랐는데, 그쪽에선 퇴짜였다.
'내가 너무 나이가 많은가...'
남은 두 명 중 한 명을 골라야 했고, 결국 고른 사람이 바로 토기였다.
상남자를 넘는 '썅남자'라는 별명과 함께, 인터넷 방송도 하고 배를 탄다는 남자.
우리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노량진 1번 출구.
토기는 갈색 셔츠 입었고, 사진처럼 턱수염을 길렀다. 생각보다 듬직했고, 말도 술술 잘했다.
점심은 그가 골라준 양식집에서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유럽 내내 양식에 질려서 입도 안 대고 싶었는데, 첫 데이트라 참고 조신하게 먹었다...
식사가 자연스럽게 끝나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런데 토기는 다음 약속이 있다며 먼저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끝난 데이트를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별로 마음 없는 것 같은데?"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나는 비혼주의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