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펫로스에 관련된 글을 접했다.
쉽게 말해 오랫동안 키워온 반려동물이 먼저 세상을 떠나 그 고통을 사람이 겪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동물을 사랑하고, 또 많이 키워온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은 공감한다.
다만, 나는 펫로스 증후군 같은, 어찌 보면 삶에 지장을 주는 경험은 하지 않았는데, 그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까 한다.
우리 집엔 항상 '미쯔'가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마다 항상 그 녀석의 이름은 미쯔다.
그렇다고 종이 같으냐 하면 그도 아니다. 골든 햄스터, 스피츠, 폼피츠...
다양각색한 동물로 우리에게 다가온 미쯔.
과연 우리 가족에게 미쯔란 어떤 존재였을까?
우선 미쯔는 윤회하는 존재다.
그러기에 우리가 만나고 있던 미쯔는,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또 다른 육신의 형태를 거쳐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그 반려동물을 미쯔라고 부른다.
사이비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영역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비과학적이며 감정적인 영역이다. 내 DNA 하나 섞이지 않는 짐승을 수십 년 같이 보냈다는 이유로 가족보다 더 아끼곤 한다. 그렇다면, 나처럼 반려동물이 윤회한다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미쯔가 윤회한다면, 우리 가족으로써는 당장 미쯔가 숨을 쉬지 않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너무 슬플 일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미쯔는 영생하며 윤회하는 존재이기에, 잠시 다한 육신을 교환하러 간 것이므로, 다음 미쯔는 더더욱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런 결론과 믿음 뒤 찾아오는 미쯔의 죽음은, 나에게는 큰 슬픔이나 일상에 지장은 오지 않았다.
핵심은 이 부분이다.
얼마나 감성적이냐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얼마나 인간의 역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냐는 점이다.
1호 미쯔가 천수를 다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다,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은 날.
2호 미쯔가 심장비대증을 앓아 사흘 밤낮을 킁킁대다 피를 토하며 죽은 날.
난 모두 보았다.
나는 생명의 축복과 저주를 둘 다 인정하면서도, 또 나의 일상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한 생각 끝에, 인간과 다르게 반려동물인 '미쯔'는 윤회한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이것이 정답일리는 없다.
다만, '나'를 잃지 않는 방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