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걸음의 가치를 찾습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명명한 '플라뇌르'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닙니다.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그들과 밀접한 거리에서, 도시의 사소한 틈새에서 시대의 본질을 읽어내는 '관찰하는 산책자'를 뜻합니다.
모두들 목적지를 향해 질주할 때, 플라뇌르는 길을 잃기 위해 걷습니다. 그들에게 도시는 지도 위의 좌표가 아니라, 한 권의 거대한 서사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홍콩, 침사추이의 그 밀집된 공기 속에서 도시의 민낯을 만났습니다.
화려한 명품 거리와 그 바로 뒷골목의 남루함이 단 한 장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비현실적으로 공존하던 곳. 하지만 제 눈에 비친 그들은 결국 같은 굴레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억만금의 야경을 배경으로 하느냐, 눅눅한 곰팡이 벽을 배경으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 압도적인 인구밀도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서 모두가 좁아터진 삶을 살고 있다는 본질은 같았습니다.
시기와 동경이 뒤섞인 그곳은 결국 '초라하게 불쾌할 것인가, 화려하게 불쾌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거대한 촌극으로 비쳤습니다.
그 강렬한 부조리를 목격한 뒤로, 저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변두리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조명에 가려진 '진짜 삶의 층위'를 읽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홍콩의 마천루 아래서 느꼈던 그 기이한 허무함은 이제 한국, 혹은 또 다른 나라 어딘가의 막다른 골목들로 이어집니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버려진 공터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불쾌함을 견디며, 혹은 어떤 희망으로 하루를 지탱하고 있는지 찾아봅니다.
저의 산책은 타인의 삶을 훔쳐보거나, 시간 때우기용 나들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독하게 낯익은 저의 과거를 찾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의 유년은 인천 청능마을에 머물러 있습니다. 산둔치를 끼고 있지만 번듯한 아파트 단지에 슬쩍 밀려나듯 모여있던 빌라들. 때로는 천장보다도 낮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던 그곳에서 저는 도시와 함께 자라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낙후된 동네였을지 모르나, 저에게는 세계의 전부였던 공간. 그곳에서 자라나며 공간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길들이고, 결핍이 어떻게 삶의 무늬를 만드는지를 피부에 새겼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도시를 포착하고, 문장으로 도시를 해독할 것입니다. 이 산책이 끝날 무렵, 여러분도 익숙한 지도 너머의 공간에 살아있는 낯선 질문들을 마주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