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엔 꽃이 없다.
의정부로 이사 온 지도 2년이 지났다.
버스를 타고 바삐 오갈 때면, 자주 마주치던 '꽃동네입구' 정류장.
그 이름의 특이성이 왠지 모르게 나의 발길을 이끌게 되었다. 나는 별 이유 없이. 그냥, 그냥. 그 이끌림에 목적 없이 꽃동네입구 역에서 내려버렸다.
절동네는 30여 년 전에 초대 노인회장 이만구 씨가 마을주민들과 함께 마을 명칭이 이미지상 안 좋다고 하여 길가에 꽃을 많이 심고 난 후에 마을회의를 거쳐서 ‘꽃동네’라고 지명을 바꾸었다 한다. 현재 이 꽃동네 명칭이 널리 알려진 음성 꽃동네와 겹쳐져서 다시 하금오리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다.
-한북신문(http://www.hbnews.kr)
이름의 독특함에 유래를 찾아보니 10년 전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 상세한 마을의 역사에 대한 부분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다만, 지리적으로 미군기지 옆에 있으며 의정부의 특성상 미군기지가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미군을 상대로 생업을 이어가는 한인마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20년 전 미군의 철수 이후,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없어진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을 것이고 결국 마을은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마을 입구에는 경로당 겸 어린이집이 있다.
재미있게도 바로 맞은편에는 버려진 어린이집이 보인다. 기존의 어린이집의 시설문제로 이전을 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폐 어린이집의 건물 옥상에는 마이크 첨탑이 달려있는데, 옛 마을 이장의 마이크 타워로 보인다. 본 건물이 어린이집 이전에는 마을 센터와 같은 역할을 담담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장면이었다.
마치 사라지는 어린이를 대변하듯,
폐 어린이집의 눈먼 앨리스 스티커가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을을 조금 돌아다니면 어렵지 않게 재개발이 논의 중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물주들, 그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 그들에게는 이런 낙후된 거주시설을 유지관리 하는 것만으로도 골치 아픈 일일 것이다. 다소 돈이 들어간다고 해도 말끔하게 새로운 건물을 올리면 세입자도 늘어나고 월세도 올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재개발은 '꽃'을 피우는 축제다.
조금 더 올라오면 꽃단장을 해두었지만 빛바랜 마을회관과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제기능을 하지 않는 안내판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이 마을의 중심이다.
이곳까지는 마을버스가 들어온다. 중간정차지인 듯 버스는 한동안 멈춰있다가 출발하고는 했다.
이 버스를 이용하는 이용객은 주로 청년과 노인들이었다.
주거경쟁에 밀려온 전월세 청년들이나, 뽑히기 직전의 고목과 같이 평생을 보낸 고택주인 노인들이라 생각되었다.
그들에게 재개발은 그다지 반가운 주제가 아닐 것이다.
언젠가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삽날이 발밑을 파헤친 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찾아올 불안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낡은 마을회관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버스에 올라탔다.
어쩌면 그들도 모르는 답을 버스를 타고 찾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재개발은 '뿌리'를 뽑는 추방이다.
마을을 쭉 따라 올라오면 옛 미군기지 터가 보인다. 오래된 벽돌담을 따라 일부 단지는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다.
번듯하게 지어진 주공아파트와 정돈된 어린이 공원, 문화회관과 프랜차이즈들은 도시의 냄새를 풍겼다.
이곳 주민들도 설비들을 많이 이용했다. 어쩌면 산책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그들도 도시화를 반기지 않는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문제는 도시화까지 걸리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이 버틸 수 있는가.
시간, 그리고 여유의 문제였다.
한 공간 속에서, 여유 있는 주민과 여유가 부족한 주민이 대립하고 있었다.
마을 끝으로 오면 등산로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마을이 아닌 산의 영역이다.
이곳에서 방향을 꺾어 마을을 타고 내려오다 보면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지역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벽돌담집. 주거단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경작지들.
시청에서는 경작을 금지한다는 문구를 세워두었지만,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인지 알 수 없는 역사와 시간이 엿보이는 결과물이었다.
이곳에 살아 숨 쉬는 주민들은, 허상이라기엔 너무 강한 국가 시스템과 싸우고 있었다.
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자 신축 오피스텔 단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사이에도 적지 않은 수의 고택들도 혼재해 있었다. 작은 지역에 급속도로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절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인간이 모이면 시작되는 문제들 - 주차문제, 환경문제.
이 좁은 지역에서 그들은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수직으로 규칙적으로 쌓아 올려진 현대적 건물들은, 바로 옆의 수평적 이웃들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새로운 주민들은 기존의 주민들과 대립해야 했다.
이미 그들은, '신규거주자'라는 용어로 서로를 구분 지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높은 둔치에 올랐다. 주변의 광경은 어떨까.
담장 너머 반환부지는 광활한 허허벌판이다. 바로 옆에는 허무한 공백만이 놓여있다.
'국가의 땅은 거대한 화분과 같다. 하지만 그 화분은 비어 있다.'
거대한 면적의 토지를 독점하고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는 동안, 담장 옆 시민들은 한 뼘의 주차 공간을 두고 서로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다툰다. 비어 있는 풍요와 빽빽한 빈곤. 그 기이한 대조가 꽃동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우리 모두가 꽃을 피우길 꿈꾸지만, 정작 늘 흙탕 속 뿌리의 전쟁을 치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어린이집 마당엔 인조넝쿨만이 무성하게 뻗어 있었다. 어쩌면 이 동네의 진짜 꽃은 화려한 건축물이나 장밋빛 재개발 공약이 아니라, 이 척박한 난개발의 틈바구니에서도 기어이 내일의 생존을 뻗어 나가는 사람들의 무뚝뚝한 발걸음일지도.
당신의 삶은 지금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그곳은 정말 당신을 꽃피울 수 있는 땅인가.
마을을 한 바퀴 돌자, 자연스레 버스정류장으로 도착했다.
2014년에 보수를 한 듯한 시멘트 바닥에는 그때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꽃동네 버스정류장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계 밑에는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한 돋보기안경이 걸려 있었다.
한 청년이 아기띠를 메고 버스에 올랐다. 한 노인은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마치 그때의 마음이 마르지 않았다는 듯.
이곳엔 꽃이 없다.
꽃이라는 이름에 매달려 하루를 견디는 뿌리들만 엉켜 있을 뿐이다.
'꽃동네'라는 화사한 이정표를 따라 들어선 길 끝엔 난개발의 거친 민낯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들은 이곳에 깊게 뿌리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잠시 머물다 바람이 불면 떠날, 민들레씨일 뿐이다.
노인들은 더 이상 뿌리를 들어 올릴 힘이 없다. 분갈이를 하는 순간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산책이 끝날 무렵,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반환부지의 허허벌판에서부터 불어와 마을 골목 구석구석을 쓸고 지나갔다. 꽃동네는 이름과 달리 거칠고 투박한 무채색의 풍경이다. 좁은 골목을 두고 다투는 주차의 피로함과, 세대 간의 단절이 서린 버려진 어린이집, 그리고 기약 없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벽돌집들까지. 이곳의 겨울은 유독 길고 시리게 느껴진다.
하지만 '꽃'이라는 이름은 가장 추운 곳에서 가장 간절한 순간에 불린다. 삭막한 콘크리트 틈바구니에서도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오늘을 살아낸 사람들. 그들의 투박한 삶이야말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알뿌리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년 봄,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담장 너머의 공터에도, 주민들의 좁은 골목길에도, 그리고 누군가의 고단한 마음 위에도 이름값만큼이나 화사한 꽃들이 피어 있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은 거친 흙바닥뿐일지라도, 이름이 품은 그 따뜻한 약속만은 저버리지 않는 계절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