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동 둔배미 마을

이 거대한 도축은 이미 시작되었다.

by 송대근

버스 종점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지명.

도심화가 진행되어 빽빽한 아파트 숲이 들어선 발곡역, 탑석역의 중간 어딘가 애매하게 있는 그 지역.

나는 그곳이 문득 궁금해졌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30분을 걸었을 뿐인데,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구도심과 신도시, 화려한 고속도로 연결망 사이에 끼어있는 이 둔배미 마을은 도시가 미처 삼키지 못한, 혹은 잠시 뱉어놓은 시간의 섬 같았다.


발곡역과 탑석역 사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배미는 농토를 계량하는 단위로 한 배미, 두 배미 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둔배미는 의정부에 소재했던 역둔토에서 유래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중략) 한편 둔토는 둔전으로서, 중앙 및 지방의 각 병영과 행정 관청의 군수 및 경비를 충당하도록 설정된 토지이며 방벌군이나 인근 농민·노비 등에 의하여 경작되었고, 대부분 지주 소작제에 의거하여 경영되었다.
출처 : 한북신문(http://www.hbnews.kr)

둔배미의 어원을 찾아보니, 군의 농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운영은 인근 농민들을 통해 이루어진 지역이라 짐작되었다. 아마 세월이 흘러,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마을로 보인다.



터널을 지나 마주한 마을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경작 및 원예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기에, 넓은 경작지와 소수의 가구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임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곳이 과거로부터 군의 부지라는 증거는 마을 곳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군데군데 박혀있는 국방부의 말뚝. 이곳은 바로 (구) 306 보충대의 뒷터로, 입영장병들의 입소식이 거행되던 장소의 뒷자락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306 보충대로 입영을 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나 부대가 해산되자, 주변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보안의 이름으로 묶여있던 고도제한이 풀리자 수직의 건축물은 현대기술을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둔배미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인근 아파트가 더 높이 우뚝 솟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으니, 둔배미마을 역시 도시의 팽창을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에 놓였으리라.



둔배미 마을은 남둔배미와 북둔배미로 나뉜다.

물론 이 마을에 직접 들어오는 차량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그저 지나가기 바쁠 뿐이다.

마치, 이 마을에 일어나는 일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남둔배미는 비교적 개발이 진행된 곳으로, 원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마을 경로당 및 원예협회도 이곳에 위치한다. 작은 상권과 정비된 큰 도로도 가지고 있다. 일부 화물차들은 이 공간을 활용(?) 하여 불법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약간의 인간적인 무질서함이 보이는 곳. 그리고 꽃과 다육이를 키우는 원예 사업과 농사가 병행되는 이곳은, 생동감이 넘치기에 더욱이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운 곳이기도 하다.

다수의 효율을 위하여 어디까지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그에 비해 북둔배미는 조금 더 순수한 느낌이다. 마을 높은 곳에는 사적지가 보이며,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묘지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경적 대신 닭의 울음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외지인을 경계하며 흙바닥을 긁는 개의 짖음이 들려왔다.


사적지 같은 오래된 무덤들과 국방부의 말뚝은 이 땅이 아주 오래전부터 공공의 목적으로 묶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국가는 언제든 이 땅의 진짜 주인이 자신임을 선포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국방부의 말뚝이 박힌 땅 위에서 닭을 키우고 농사를 짓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국가의 눈에 이곳은 채워야 할 '빈칸'이겠지만, 이들에게 이곳은 대대로 일궈온 '삶의 전부'다. 소수가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가 다수의 효율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역설이 둔배미의 찬바람에 실려 온다.


걸어서 30분이면 닿는 아파트 숲의 불빛을 보며, 둔배미의 농민들은 매일 밤 자신의 필지가 사라지는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도심과 너무 가깝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곧 지워질 운명이라는 저주와 같다.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30분만 걸어 나가면 되지만, 정작 도시는 그 30분의 거리조차 좁히기 위해 이 마을의 지평선을 통째로 매립하려 한다.

드넓은 토지를 가졌다는 이유로 '소수의 이기주의'로 지명된 둔배미 사람들, 땅의 크기가 슬픔의 크기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마을 끝에서 발곡고등학교를 만났다. 둔배미의 개발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할 아이들. 아이들은 이곳이 곧 누군가의 농토가 아닌, 지도 위 숫자로 치환될 미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나는 '공공(公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생각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지평선을 지워내는 것은 정당한가.



둔배미의 시간은 정직하다. 내일이라도 집안에 경사가 있다면, 주민들은 익숙한 손길로 닭장 속 암탉의 목을 꺾을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생존의 방식이자 지극히 사소한 도축이다. 하지만 지금, 정작 자신들의 목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처지가 된 것은 주민들 자신이다.


국가는 공공주택이라는 거창한 잔칫상을 차리기 위해, 이 광활한 필지를 점유한 소수의 목을 조용히 겨누고 있다. 닭의 목을 꺾는 것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라면, 이 마을의 숨통을 끊는 것은 도시의 팽창을 위해서다.

국가는 '개발'이라 명하고 정당한 '보상'을 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본질은 '당연한 착취'에 가까웠다.


둔배미 북길의 무덤들은 말이 없고, 남길의 비닐하우스는 겨울바람에 몸을 떤다. 국방부의 말뚝과 재개발 반대 현수막이 나란히 박힌 길을 걸으며, 도시로 돌아왔다.


조용히 돌아오는 발걸음.

그 고요 속, 둔배미의 사거리에 박힌 주택공사의 팻말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 거대한 도축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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