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에 목숨 건 할머니와 도망친 자식들

by 송대근
“완전 노인네가 커피에 미쳤어!”



아내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외쳤습니다.

(*)이브닝이 끝나고 퇴근한 아내. 샤워를 갓 마치고 나온 아내는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슨 일인데? 또 누가 개판 쳤어?”

모락모락 흐트러지는 김을 헤쳐가며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묻습니다.

보통 이렇게까지 성을 낼 때는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이 태반이거든요.


“아니 글쎄...”

아내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말을 시작했습니다.

드라이기를 흔드는 아내의 손목에는, 푸르스름한 멍이 있었습니다.




“치료실 안 간다고!!”

“왜 안 가는데요?”

어제 입원한 박씨 할머니는 치료실을 안 간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걸어갈 힘이 없어!”

“부축해 드릴 거예요.”


“이, 이것들이... 날 여기다 구속시켜 두고...”

박할머니는 무언가 찾듯 두런두런 거린다.

“야이년아! 니들도 구속당하면 좋겠냐!”

말이 안 통한다. 치맨가. 보호자(딸)에게 전화를 건다.

“네, 안녕하세요. 병원인데요. 환자분이...”

상황을 설명하자 딸은 자기가 직접 전화통화하겠다고 했다.

몇 분 뒤, 할머니의 개인전화가 울렸고 무어라 이야기를 중얼거리더니, 전화를 끝내고는 치료실로 가겠다고 했다.


‘딸 말은 잘 듣는 희한한 할머니네’

이미 박할머니는 단독행동으로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다. 낙상 이후로 통증이나 멍은 없었지만 주의대상이다.


치료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가는 길, 박할머니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할머니를 화장실에 앉힌다.

“할머니, 일 다 보시고 여기 콜벨 누르세요. 알겠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급히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박할머니는 혼자서 일어나 바지를 걷어올리고 있었다.

“할머니! 혼자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내 혼자 할 수 있어.”

똥고집이다. 하지만 혼자서 움직일 수 있었으면 병원에 입원할 일도 없었을 거다.


너무나도 비협조적인 태도. 낙상위험이 너무 높았다. 아무래도 낙상방지가 필요했다.

환자침대로 돌아와 압박붕대로 안전망을 설치할 거라고 설명하자,

“나는 불량환자니까 이거 안 해.”

“아뇨. 할머니, 밤에 주무실 때만 할 거예요. 지금은 안 하고요.”

“밤에도 안 해!!”

이놈의 똥고집!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상황을 전했다. 그제야 할머니는 알겠다며 수긍한다. 이 정도면 딸이 항상 상주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사정이 있겠지.

이곳 통합병동에 있는 환자에게는, 그리고 보호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대신 이 일을 해주고 있는 것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박할머니가 침대의 (*)사이드레일을 내리고 맨발로 나와 걸으려고 했다!

“할머니! 혼자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아니, 믹스커피 타먹을라고 그랬어.”

“할머니. 낙상위험 높으니까 콜벨 눌러서 보조받으세요.”

이걸로 몇 번째 설명인지 모르겠다.

“그 말도 맞는데, 모닝커피는 몸에 좋은 거야.”

어이가 없다. 어차피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지도 않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4인실을 쓴다. 그런데 병실 내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할머니, 다른 사람들이 잠을 못 자요. 전화는 자제해 주세요.”

“누가. 저, 저년이? 야이년아! 나 때문에 잠 못 자냐!”

할머니는 갑자기 맞은편 환자를 향해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할머니! 조용히 하세요!”

겨우 진정시킨다. 시간도 늦었으니 주무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초저녁부터 자서 이제 잠이 안 와.”

잠투정을 부렸다. 아기 재우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를 잠을 재우기 위해 몇 분 간 달래고 눕혔다. 그리고 단독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다시 당부했다.


하지만 새벽,

기어코, 복도에 혼자 맨발로 걸어 나온 모습이 발견되었다!

“할머니! 단독행동 하시면 안 돼요!”

“그냥 커피 타먹으러 가는 거야.”

그놈의 커피! 낙상위험성을 다시 한번 설명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알어, 건들지마. 메리크리스마스”


한숨이 나오지만, 이런 일은 이미 기계적으로 응대하게 되었다.

“할머니. 한 번 더 단독행동 하면 딸한테 알릴 거예요.”

“안 할게. 그러니까 말하지 마.”

할머니를 보조하여 침상에 돌려보냈다.

이후, 나는 할머니의 상황을 딸에게 전화로 전달했다. 딸은 개인적으로 연락해 할머니에게 잘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글쎄,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다음날 아침.

“간호사언니, 그 앞에 있는 할머니 있잖아. 오늘 믹스커피를 3잔이나 마시려고 했어.”

이 할머니는 내가 몇 살로 보이길래 언니라고 부르실까? 이미 신경도 안 쓰는 일이지만. 아무튼 박할머니 맞은편에 누운 환자가 박할머니의 상태를 고발했다.

“그 할머니 커피 또 실컷 마시면 내가 잠을 못 자. 아이고, 아이고..”

“알겠어요. 환자분. 커피 못 마시게 할게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더 이상 믹스커피는 사 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다음 방문 때 소지 중인 믹스커피도 모두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날 점심.

“커피 줘! 커피 달라고!”

병실에서 큰 소리가 나서 가보니, 박할머니는 커피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 좀 조용히 좀 해!!”

박할머니를 고발한 맞은편 환자는 박할머니의 아우성에 참지 못하고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둘 다 조용히 하세요!”

상황을 진정시키고 사정을 듣는다. 박할머니가 커피를 달라고 난리를 쳐서 잠을 못 자서 싸우게 됐다는 것이다.

“할머니, 당뇨니까 커피는 안 돼요.”

“알아. 그래도 식후커피는 괜찮아.”

혈당수치는 이미 위험 수준이다. 커피를 주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렇다고 다른 환자들의 밤을 망가뜨릴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독을 내밀었다.

“그럼 하나만 드릴 테니까 내일 퇴원할 때까지만 좀 참으세요.”

그제야 박할머니는 진정한 기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 진정은 몇 시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경찰입니다.”

조끼를 맨 2인조의 경찰이 (*)스테이션에 얼굴을 비췄다. 간혹 보기는 하지만 봐서 좋은 일은 없는 사이.

“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신고받고 왔습니다. 여기 병동에...”

박할머니가 맞은편 환자랑 기어코 또다시 말싸움을 벌이더니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신고를 왜 하셨어요?”

경찰의 청취조사가 시작되었다.

“저년이 나한테 욕을 했다고.”

“병실에서 전화하는 게 제정신이냐! 잠 좀 자자!”

“법대로 해, 법대로!”

뭘 법대로 하자는 건지. 경찰의 상황질문에, 어차피 둘 다 내일 퇴원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두 환자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할머니. 내일 퇴원하시니까 지금은 사이좋게 지내고 퇴원하는 게 맞아요.”

내 말은 그렇게 안 듣더니. 경찰이 주는 신뢰 때문일까. 박할머니는 그 말에 좀 누그러드렀다.

경찰은 두 환자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는 돌아갔다.


이 사실을 간호과장, 원무과장에게 알리자,

“그럼 일단 맞은편 환자는 다른 방에서 재워요. 또 못 잘 수 있으니까.”

일만 늘었다. 내일 퇴원할 환자를 옆 병상 침상으로 옮겼다.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해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다른 보호자인 아들 역시 연락되지 않는다.


이윽고,

스테이션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콜벨 소리.

“커피 달라고!!”

박할머니는 경찰이 돌아간 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스테이션으로 나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보호사도 진정시키려 했지만 통 말을 듣지 않았더란다.

“벨 눌렀으니까 커피 줘!!”

박할머니는 내 팔목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그 손아귀를 풀어내고 다시 한번 말했다.

“할머니, 당뇨 있으니까 커피는 안 돼요.”

“몰라, 커피 줘!!”

몇 번을 똑같은 말은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보호자 두 명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이게 하루 동안 있던 일이야!”

아내는 진작에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얼마나 짜증 났을까요. 병원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시간이 자정입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해?”

“퇴원시켜야지. 어차피 내일 출근하면 이미 퇴원해 있을걸.”

“근데 보호자는 왜 전화를 안 받는대?”

“자기들도 아는 거지. 답도 없는... 거.”

아내의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었지만, 피로에 빠져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이불로 덮어주고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홀로 조용히 생각에 잠깁니다.

할머니에게 커피는, 병원이란 통제된 환경에서 유일한 자유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긴 병 수발에 딸도 아들도, 등을 돌려버린 게 아닐까.

할머니는, 왜 딸 말이라면 끔뻑 죽었을까.


그러고 보니, 아내는 모기업 회장님한테 팔을 물린 적이 있더랬지요.

그걸 좀 물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 아니. 일단 접어둡시다.

내일도, 아내는 병원에 출근해야 하니까요.



(*)이브닝 : 3교대 간호사 근무시간 중 14-22시까지 근무.
(*)사이드레일 : 환자의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침대 옆면에 설치된 보호대.
(*)스테이션 : 병동 중심에 있는 간호사 작업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