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점을 물어뜯는 속옷회사 회장님

by 송대근
"이놈의 트레이닝! 지긋지긋해!"



(*)나이트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트레이닝? 또 신규쌤 교육해?”

“어. 이번엔 얼마나 버틸라나 몰라.”

아내의 병원은 간호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신규채용을 하고는 있는데, 다들 교육받은 지 몇 달도 안되어서 도망가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번에 왔던 50대 아줌마는 한 달 만에 도망갔더랍니다.


“이번에 뽑은 쌤은 좀 괜찮아?”

“몰라? 남자라던데. (*)임상경험이 없대.”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도 다양한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병원에서 필요한 인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즉시 현장 업무를 볼 수 있는 인원은 늘 부족한 모양입니다.

“피곤하겠네.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가르쳐봐.”

“출근하자마자 물어봐야지. 얼마나 다닐 생각이냐고.”

잦은 퇴사는 가르치는 사람을 탈진시키고, 숙련되지 못한 손길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한숨을 내쉬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슬쩍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엔 무슨 회장님 입원했다고 하지 않았어?”

“회장님? 아, 그 양반은 그냥 좀비 몬스터야.”

“상태가 어떻길래?”

아내는 화장대를 정리하며, 그 기이한 기록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




“2 병동 신규 환자는 VIP에요. 각별히 신경 쓰세요.”

수간호사 쌤의 공지가 내려왔다. 보통 VIP들은 유명인이나 병원 임직원 가족들이기에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누군데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속옷 브랜드의 창업주. 아니나 다를까 2인실 병동을 전세내서 혼자 쓰고 있었고, 병실에는 수행비서들이 성곽처럼 버티고 섰다.


회장님은 이전에도 종종 내원했지만, 이번에는 폐렴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자택에서 왕진을 받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단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미 잠식된 치매였다. 평생 수천만 명의 아랫도리를 책임지는 ‘부드러운 순면’으로 제국을 건설했던 노신사는, 이제 정신의 끈을 놓친 채 짐승의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으! 으으!! 으으으!!!”

“환자분 채혈 좀 할게요.”

대화를 할 수 없는 회장님은 팔다리가 병원침대에 묶인 채 괴성을 지르고 있을 뿐.

소통이 불가능하기에 의사결정은 상주한 아내나 가족, 수행비서들과 진행하게 된다.


“으으으!! 퉷!!”

그 와중에도 회장님은 침을 뱉는 둥 공격성을 감추지 못했다.

저항이 너무 심해 혼자서는 채혈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부득이 제지가 필요했다. 다른 간호사를 도와 회장님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르르르!”

“으악!”

이빨이 살점을 파고드는 둔탁한 감각과 함께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채혈 중인 바늘이 흔들릴까 봐 팔을 빼지도 못하고 입술만 깨물며 버텼다. 하지만 더 아픈 건, 그 광경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사모님의 무심한 목소리였다.

“어머머, 영감도 참... 어떻게 좀 잘 안 돼요? 자꾸 움직이잖아.”


사모님은 내 팔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이빨 자국보다, 남편의 소란으로 품위를 해치는 것이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영광도, 고마움도 없는 상처. 그런 사모님도 가끔 회장님이 말을 안 들으면 그의 이마를 툭 때리며 핀잔을 주곤 했다.

“이 노인네가 진짜. 곱게 잠이나 자요.”

그 광경은 병원에 있던 모두에게 공유되며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인턴이 회장님의 콧줄 삽입이 계속 실패하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회장님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쳐버렸다.

“영감탱이야! 가만히 좀 있어!”

물론 그 광경은 수행비서에게 목격되었고 인턴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인턴을 온전히 비난할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이 거세된 현장에서, 매일같이 침 세례를 받고 살점을 뜯기면서 우리들의 인간성도 조금씩 마모되어 갔으니까.


으르렁 거리며 침을 뱉고. 그런 일상은 몇 달이고 지속되었다.

중간중간 아들딸을 포함한 가족들도 찾아오고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도 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입원수속을 밟을 때마다 수행비서들의 팔뚝에도 이빨자국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빨리 와서 묶어!”

기저귀를 갈거나, 체위변경을 위해 보호대를 잠시 풀어야 할 때면, 환자는 항상 주변의 모든 것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항의를 하던 보호자들과 수행비서들도, 결국은 병원에 협조하며 환자를 통제하기 바빴다.

한때는 수천 명의 입을 옷을 만드시던 분이, 이제는 자신 몸 하나 가눌 힘이 없어 환자복 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그가 속옷으로 쌓아 올린 금탑은, 지금의 초라한 기저귀가 되어 돌아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장님에게 물렸는지는 손에 꼽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회장님은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물론 연세가 몹시 많으셨기 때문도 있겠다.


그렇게 몇 달간의 입원신세를 끝으로 회장님은 별세하셨고, 장례식은 별세하신 우리 병원이 아닌, 멀고 먼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가서 치르게 되었다.

살아서는 본인의 몸 하나도 통제하지 못했고, 죽어서도 결국 편안하게 가지 못했다.

그것이 회장님의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끝났어. 코미디 같은 환자였지.”

아내는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는 듯 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그 웃음 뒤에 가려진, 누군가의 마지막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무게를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나, 수천억의 자산가였던 회장님의 삶이나, 결국 최후에는 타인의 손에 자신의 뒤처리를 맡겨야 한다는 점에선 공평하기까지 합니다.


아내는 다시 무거운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오늘 처음 온다는 그 신규 간호사도 누군가에게 물어뜯기고, 비루한 마지막을 지켜보며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의미는,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곳으로 매일 아침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지독한 성실함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트 : 3교대 간호사의 야간근무. 22시~07시 근무.
(*)임상 : 의료시설에서 환자를 직접적으로 돌보는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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