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 너무 힘들었어.”
(*)데이를 마치고 아내가 퇴근했습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선 뒤 돌아온 터라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해져 있습니다.
“고생했어. 밥은 먹었어?”
퇴근하고 오면 시간은 오후 3시 반 정도 됩니다. 식사시간은 훨씬 지난 시간. 하지만 제가 아내에게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니,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아내는 병원에서 카톡을 종종 보내는데 오늘은 그 카톡도 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데이. 주말 간 밀려있던 입원과 수술일정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고, 입원과 퇴원이 겹쳤다면 더더욱 정신없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볶음밥 먹을래? 씻는 동안 해줄게.”
간호사의 남편으로써 몇 년의 경험 덕분에, 사실 저는 이미 끼닛거리를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와! 신난다!”
아내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치익- 치익-
주방에서 주걱이 팬을 긁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립니다. 고소한 파기름 냄새가 아내가 들고 온 병원의 소독약 냄새를 금세 덮어버립니다. 하지만 아내가 어깨에 메고 온 피로는 쉽게 덮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내는 이번 병원이 벌써 세 번째 병원입니다만, 밥을 못 먹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드문 일도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밥을 못 먹게라도 하는 걸까요?
“(*)액팅쌤, 식사하세요.”
환자들의 식사를 다 돌리고 온 액팅쌤에게 식사를 권했다. 오늘은 비교적 한산했다. 환자들의 콜벨도 울리지 않았고.
“어... 쌤. 근데 밥을 일 인분밖에 안 줬어요.”
액팅쌤이 난처하다는 듯 대답한다. 환자식과 함께 스테이션 간호사 식사도 내렸는데, 이걸 또 일 인분만 내렸나 보다.
“아 진짜... 웬일로 환자식 실수 안 했다 했더니.”
환자 개개인마다 앓는 병이 다르다 보니, 하나하나 맞춤으로 만들어야 하는 수고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실수하는 것은 분명 조리실의 실수다. 때때로 환자들의 밥이 서로 뒤바뀌기도 하면 다시 밥을 바꾸러 보내야 하고, 그럼 또 식사시간이 늦어진다고 환자들이 난리다. 혹시 잘못된 밥을 환자가 먹기라도 하면 보호자가 난리다.
그 사이에 낀 간호사만 욕받이가 된다.
나는 조리실로 전화를 걸어 밥을 하나 더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식판은 하나밖에 못 내려요.” 쌀쌀맞은 조리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왜요? 여기 지금 두 명 있어요.”
간호사는 스테이션을 비울 수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응급 상황 때문에 식당까지 가는 10분조차 사치다. 항상 한두 명은 남아있어야 한다.
“식판 개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하나밖에 못 내려요.”
“그럼 식판 하나에 음식 좀 많이 내려주세요. 두 명 먹어야 된다고요.”
“어차피 다 남기잖아요.”
우리가 남기고 싶어서 남기나? 먹다 말고 뛰쳐나가니까 남기는 건데...
“아... 됐어요. 그럼.”
짜증이 밀려온다. 아니, 남기 든 말든 이인분은 줘야 할 거 아니냐고! 나는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 전화를 끊었다.
“... 어떻게 됐어요?” 액팅선생님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쌤, 식사하세요. 전 안 먹을래요.”
입맛이 뚝 떨어졌다. 배는 고프지만 연차가 낮은 액팅쌤에게 식사를 양보한다.
차트가 가득 쌓인 책상. 한쪽에 식판, 볼펜과 소독솜, 그리고 누군가의 혈압을 적어둔 포스트잇 사이에서 밥숟가락을 든다. 밥알 사이로 병원 먼지가 섞여 들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지만, 그런 걸 따질 여유는 없다.
한 입 우물거리다가도 환자가 부르면 입안의 음식물을 숨기듯 삼켜야 한다. 식사는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스러운 행위로 전락했다.
게다가, 병원밥은 열에 아홉은 맛이 없다.
환자식이 맛이 없는 것은 그나마 이해한다. 근데 왜 직원들이 먹는 식사까지도 맛이 없는 걸까? 영양사가 대충 일하는 걸까? 우리 병원은 메뉴의 밸런스가 너무 나쁘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메뉴만 해도 미역국에 떡볶이가 나왔는데, 사실 어제는 미소장국에 가지무침이 나왔다. 국을 왜 이런 식으로 배치하는 거야?
액팅쌤이 밥을 먹고 있는 동안 나는 스테이션에 숨겨둔 과자를 꺼냈다. 간호사들이 조금씩 회비를 모아 이런 식으로 간식을 준비해 둔다. 근데 이게 간식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군대로 치면. ‘전투식량’에 가깝다. 이것도 일하는 데 필요한 거니까, 병원이 지원해줘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 띵동
오분 정도나 지났을까? 아니나 다를까 콜벨이 울린다. 액팅쌤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병실로 갔다.
잠시 뒤 돌아온 액팅쌤.
“무슨 일이에요?”
“환자가 똥기저귀를 헤집어놨어요.”
기껏 밥을 먹던 중인데, 그중에서도 식욕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면 밥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 유일하게 먹는 방법은 최대한 빠르게 밥을 욱여넣는 방법뿐.
처치하는 새 밥은 식어버려 더더욱 맛이 없어졌지만, 액팅쌤은 남은 식사를 욱여넣었다.
이러느니 과자를 먹지.
“아! 너무 배부르다!”
허겁지겁. 아내는 오늘도 5분 만에 볶음밥 한 그릇을 비워냈습니다. 그 속도에는 환자의 콜벨에 즉각 반응해야 했던 수년간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욱여넣는' 것에 익숙해진 아내의 모습은, 대한민국 간호사들을 대표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거대한 공장 같은 병원에서 간호사의 끼니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먼저 생략되는 부품 같습니다. 조리사는 ‘남기지 않느냐’고 했지만, 사실 우리가 남기는 건 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 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먹고살려고 일합니다. 그런데 그 목표인 식사가 방해를 받는다면 그 일은 무엇을 위한 걸까요? 밥 먹을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환자를 향한 진심 어린 친절까지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런 문화는 언제쯤이나 고쳐질까요?
아니, 고칠 생각은 있을까요?
(*)데이 : 3교대 간호사의 아침근무. 07시~15시 근무.
(*)액팅 : Acting, 실제 환자에게 필요한 투약, 처치 등을 행하는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