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용돈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by 송대근
“어머니, 용돈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오후였습니다. 고요한 거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은 평화롭기만 한데, 식탁을 사이에 둔 두 여성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기류가 흐릅니다.

며느리의 조심스러운 한마디가 시어머니의 가슴에 툭, 하고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박힙니다.


“그래? 요즘 씀씀이가 좀 많니?”

시어머니는 내심 덤덤한 척 대답을 건넵니다. 하지만 머릿속 셈법은 복잡해지기 시작하죠.

‘용돈을 줄인다니? 우리 아들 용돈도? 아니면 내가 받는 돈이 아깝다는 건가?’


반대로 며느리의 마음속엔 이런 문장이 맴돕니다.

‘어머니, 물가가 오른 거예요. 그리고 당신 아들 벌이만으로는 이제 부족한 세상이고요.’


오늘은 혈연으로 맺어진 엄마와 딸이 아닌, 법적으로 맺어진 두 여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바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돈’ 이야기입니다.



텅 빈 곳간을 채워야만 하는 ‘절약의 돈’

시어머니 세대에게 돈은 어디서 왔을까요?

네, 명확했습니다.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남편이 밖에서 벌어오는 전리품이었지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아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경제력은 바로 절약이었습니다.

쓰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10원을 쌓아 100원을 만드는 것이 아내의 유능함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돈에는 항상 누구의 것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피땀 흘려 벌어온 돈.


이 문장은 시어머니 세대에게 일종의 성역과도 같았습니다.


한편 시어머니는 서운합니다. 내가 아껴서 세운 이 가정의 질서를, 며느리가 용돈 삭감으로 흔드는 것 같거든요. 내 아들의 고생을 며느리가 쥐락펴락하는 것만 같은 감정이 밀려옵니다.



가치를 순환시키는 ‘자원의 돈’

하지만 며느리의 세상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지금의 며느리는 과거의 가정주부와는 전혀 다른 경제적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 이번에 2년간 육아휴직 들어가요.”

이 한마디는 단순히 일을 쉰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대의 며느리에게 가정주부란 영구적인 신분이 아니라, 인생의 특정 시기에 선택한 일시적 상태입니다.


그녀는 불과 몇 달 전까지 팀을 이끌던 리더였고, 프로젝트를 완수하던 전문가였습니다. 노동 시장에서 잠시 이탈했을 뿐, 그녀의 잠재적 소득 능력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녀에게 돈은 남편이 준 은혜가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함께 관리하고 배분해야 할 공동자원입니다.

축의금을 내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단순한 낭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관계자본을 쌓는 투자라고 믿습니다. 시대가 변하며 돈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가 바뀐 것이지요.



세계관의 충돌 : 절약인가, 합리인가

갈등은 바로 이 단어의 정의에서 시작됩니다.

결핍의 시대가 남긴 흉터를 가진 시어머니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나 같으면 안 쓰고 참고 산다.”

“어머니, 그러니까 용돈을 줄이는 거에요.”

“줄일 게 따로 있지. 네 사치만 없으면 돼.”


시어머니에게 용돈은 정성이자 도리이지만, 며느리에게 용돈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지출일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축의금은 사치일지 모르나, 며느리에게 그것은 사회관계의 유지비입니다.


“용돈 줄일게요.”

사실 액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제 경제적 주도권이 이제 우리 세대에게 있습니다.”라는 선언입니다.

이에 맞서는 시어머니의 “내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이다.”라는 방어는, 자신의 평생 가치관이 부정당하지 않으려는 세대적 저항인 셈이지요.




서로의 시간축을 인정한다는 것

우리는 어떻게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요?


먼저, 돈의 주어를 바꿔야 합니다. 내 아들의 돈도, 마음대로 하는 돈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가족의 내일을 위한 자원이어야 합니다.


또한 어머니 세대는 인정해야 합니다.

며느리가 집에 있다고 해서 경제적 주체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반대로 며느리 세대는 이해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고집 뒤에는, 아무것도 없던 가정을 지켜낸 공포와 자부심이 섞여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머니의 지혜는 리스크 관리입니다. 최악의 상황에 곳간을 잠그는 힘이지요.

며느리의 전략은 성장 관리입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힘입니다.

이 두 관점이 만날 때, 가정의 재무구조는 비로소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용돈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며느리가 정말 무례한 걸까요?

아니면 아들의 돈을 지키려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그저 노파심일 뿐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건,


돈이 아니라, 서로가 살아온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라는 차가운 매개체를 통해 우리가 정말 확인하고 싶었던 건, ‘나의 수고를 알아달라’는 따뜻한 인정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돈의 대화가 어떻게 흐르고 있나요?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오빠 결혼하는데 돈 좀 보태 주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