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학원 하나만 빼면 안 돼?

by 송대근
“나 오늘 학원 하나만 빼면 안 돼?”


저녁 9시 40분.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임에도 이 집의 식탁은 이제야 하루가 시작되는 듯 급급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식어버린 국과 뚜껑이 덮인 채 굳어가는 밥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딸의 한마디에 엄마의 생각이 멈춥니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엄마가 되묻습니다.


“왜 또? 다음 주에 시험이잖아.”

“너무 피곤해. 수학, 영어, 과학... 다 끝나면 밤 12시야. 엄마, 나 진짜 숨 막혀.


딸의 책가방이 식탁 의자에 무겁게 걸려있고, 엄마는 식탁 한쪽에서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똑딱거리는 소리 사이로 무거운 공기가 흐릅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이번 달 카드값, 다음 주 결제될 학원비, 그리고 새로 사야 할 교재비가 말벌의 날갯짓처럼 웅웅대고 있습니다.


엄마는 잠시 딸을 응시합니다. 딸의 표정이 진실인지 꾀병인지 가리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엄마는 곧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다 너 좋은 대학 보내려고 이러는 거야. 지금 고생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해.”

“엄마도 좋은 대학 안 나왔잖아. 그래도 잘 살잖아.”

“이게 잘 사는 걸로 보이니? 엄마는 지원만 제대로 받았어도 인서울 갔어.”


엄마는 무언가에 폭발한 듯 욱했지만, 이내 진정합니다. 딸도 엄마의 역린을 눈치채고 조용히 책가방을 등에 멥니다.

이것은 사랑의 이면일까요?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압박일까요?



딸의 시간: 조건부 사랑이라는 족쇄

중학생의 하루는 어른들의 짐작보다 훨씬 길고 가혹합니다.

아침 7시에 눈을 떠 오후 4시에 끝나는 학교 수업.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밤 12시까지의 사교육 행렬. 어른들에게도 가혹한 초과근무가 아이들에게는 일상입니다.

딸의 세상은 창밖의 풍경이 아니라 학원 버스 검은 유리창 너머로 흘러가는 가로등 불빛입니다.


엄마는 가방을 메고 나서는 딸의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찔러 넣어줍니다.

“저녁 거르지 말고 맛있는 거 사 먹어.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지 말고.”

엄마에게 그 지폐는 오늘 낮, 상사의 무례한 언행을 견뎌내며 바꾼 인내의 대가이자, 딸의 배를 채워주고 싶은 가장 간절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딸에게 그 돈은 어떤 의미일까요?

학원가 골목, 단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딸은 그 돈으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삽니다.


딸에게 돈은 맛있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다음 수업까지 급하게 끼니를 해치워야 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엄마가 힘들게 자신의 시간과 맞바꿔온 그 뜨거운 사랑은, 딸의 손에 닿는 순간 그저 학원을 등록하기 위한 종이조각이나 허기를 지우기 위한 차가운 화폐로 한정되어 버립니다.

이 온도 차이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더욱 차갑게 얼려버립니다.


어느 날, 딸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나 오늘 수학 98점 맞았어!”

하지만 엄마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잘했는데 2점은 아는 건데 실수한 거야? 2점이면 쉬운 문제였을 텐데.”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를 딸은 마음속에서 이렇게 번역합니다.

‘100점이 아니면 엄마를 완벽하게 기쁘게 할 수 없어.’


그날 이후 딸은 본능적으로 깨닫습니다. 엄마의 미소는 점수의 높낮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엄마의 기분은 내 성적표에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건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몸으로 그것을 체득합니다.


성적은 오르지만 웃음은 사라집니다. 문제집을 한 권씩 끝낼 때마다 성취감 대신 ‘다음은 더 어려운 걸 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쌓입니다. 번아웃은 그렇게 조용히,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찾아옵니다. 하루를 끝내고 방에 틀어박혀 휴대폰만 보는 딸을 보며 엄마는 혀를 찹니다.


‘우리 애는 왜 이렇게 나약한지 모르겠어.’

아이는 정말 나약한 걸까요, 아니면 단 한순간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을 듣지 못해 지쳐버린 걸까요.



엄마의 시간: 불안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마음

한편, 엄마의 하루도 딸의 하루 못지않게 고단합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야근을 견디고,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를 웃으며 받아내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학원비 이체완료’ 문자를 확인합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엄마는 생각합니다.


‘이번 달도 정말 빠듯하네. 내 옷 한 벌 사는 건 또 미뤄야겠어.’


하지만 딸 앞에서는 절대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무게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딸은 엄마의 지워진 립스틱 자국과 퉁퉁 부은 다리를 보지 못합니다.

아니, 볼 기회도 없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사랑을 ‘돈’이라는 가시적인 형태로 바꾸어 전달합니다.

더 비싼 강사, 더 유명한 학원, 더 좋은 교재. 그것이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엄마는 공부할 형편이 안 됐어. 넌 다 해보고 선택하라는 거야.”


그 말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딸에게는 그 진심이 ‘엄마가 못 이룬 한을 내가 대신 풀어야 한다’는 무거운 부채감으로 기출변형됩니다.

투입된 자본이 클수록, 기댓값도 커집니다.

사랑은 어느덧 투자와 보상의 논리로 변질되고, 급기야 이런 비수 같은 말이 오갑니다.


“너 학원비가 얼마인 줄은 알아?!”

“엄마가 가라고 했지, 내가 보내 달랬어?!”


둘 다 틀린 말이 없기에, 이 대화의 끝은 항상 더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사회의 시간: 유통기한이 지난 정답지

우리는 이제 멈춰서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 ‘성공의 공식’이 여전히 유효한지 말입니다.


좋은 대학이 미래를 보장해 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하면 평생이 보장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IMF라는 거대한 파도를 보았고,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안정적이라던 공무원은 저임금과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으며, 블루오션이라던 개발자의 영역조차 이제는 AI가 코드를 대신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10년, 20년 뒤의 세상을 누가 감히 예측할 수 있을까요?

지금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즈음,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능력이 환영받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이 사교육의 행렬이 과연 아이의 미래를 지켜줄 보험일까요, 아니면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비싼 진통제일까요.


엄마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학원비를 결제하고, 딸은 사랑받기 위해 점수를 써 내려갑니다. 그 교환의 현장에서 ‘대화’와 ‘관계’는 가장 먼저 희생됩니다.


“학원 늦겠다, 얼른 나가.”


이 장면, 과연 남의 집 일이기만 할까요?



우리의 시간: 남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사랑을 ‘쏟아붓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사랑을 ‘소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분 아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유대감’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남을 진실들이 있습니다.

대학간판이 아닌, 부모와 자녀 사이의 신뢰입니다.

직업형태가 아닌, 아이의 단단한 자존감입니다.

점수가 떨어져도,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엄마의 시간은 돈으로 바뀌어 학원 계좌로 흘러가고, 딸의 시간은 점수로 바뀌어 시험지 위에서 소멸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은 그 돈도, 그 성적도 아닌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간입니다.


오늘 밤, 셔틀버스에서 내려 지친 걸음으로 현관문을 여는 아이에게 어떤 첫마디를 건네시겠습니까?

시험결과 대신,


“오늘 정말 고생 많았지? 배고프진 않니?”


라는 말 한마디로 아이의 닫힌 마음을 두드려보는 건 어떨까요?


엄마가 건네는 지폐 한 장이 수단이 아닌 마음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답은 그 지폐 자체가 아니라, 그 지폐를 건네며 나누는 눈 맞춤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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