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먼저인가, 의미가 먼저인가
어느 도시의 골목을 걷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그것은 아름답기도 하고, 동시에 어딘가 어색하다.
꼭 풍경이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번 산책의 목적지는 부산의 작은 항구, 홍티포구다.
다대포 해수욕장 너머, 부산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지도에서 세밀하게 찾아보지 않으면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칠 장소.
더구나 위치가 특이하다.
이곳은 바다를 마주한 관광지의 끝자락도 아니고, 오래된 어촌 마을의 중심도 아니다.
거대한 공장단지 안쪽, 대형 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산업지대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먼저 삭막한 공장들이 나타난다. 굳게 닫힌 철문과 높은 담장. 공장의 매캐한 냄새와 기계음이 공간의 공기를 채운다.
그 틈을 조금 더 걸어가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바다가 열린다. 그리고 그 앞에 거짓말처럼 알록달록한 포구가 나타난다.
이 작은 포구에는 한 가지 이질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색(色)이다.
방파제와 건물, 구조물들이 무지개색으로 칠해져 있다.
빨강, 주황, 노랑, 파랑, 보라.
색들은 망설임 없이 서로를 잇는다. 햇빛이 좋은 날에는 그 색들이 주변의 회색빛 공장과 대비되어 유난히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프레임 안의 풍경은 퍽 근사하다.
스마트폰을 들어 몇 장 찍어보면 색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겹쳐지며 마치 이국적인 여행지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카메라를 내려놓고 주변을 다시 바라보면, 묘한 위화감이 밀려온다.
포구 바로 뒤에는 무채색의 공장 담장이 버티고 서 있고, 금속성의 절단음이 울려 퍼진다.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도, 향긋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도 없다.
사람의 기척조차 드문 이곳에, 포구의 규모를 한참 상회하는 세련된 커뮤니티 센터와 전망 구조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 풍경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본래 이곳의 이름인 ‘홍티(虹峙)’는 무지개 언덕이라는 뜻이다. 비 온 뒤 무지개가 자주 뜨던 평화로운 어촌의 이름.
그러나 공단이 들어서며 무지개는 사라졌고, 도시는 그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겠다며 이 작은 포구에 약 4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이다.
낡은 어촌을 정비하고 예술의 옷을 입혀 '제2의 감천문화마을'을 꿈꿨을 누군가의 기획.
하지만 공간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에는 늘 명확한 이유가 있다. 교통이 편리하거나, 풍경이 압도적이거나, 혹은 삶의 동선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거나.
홍티포구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접근조차 어려운 공단 한가운데에 오직 '이름' 하나에 꽂혀 집행된 예산은,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채 색채로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보며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철근 콘크리트 위에 꽂아둔 조화
(fake flower)
분명 예쁘지만, 그 자리가 원래 꽃이 자라던 곳은 아니다.
누군가 씨앗을 심고 정성껏 길러낸 생명력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가져다 놓은 장식에 가깝다.
40억 원이라는 거대 자본이 동원되어 흙 한 줌 없는 척박한 공단 땅에 꽂아둔 시들지 않는 조화.
그것은 화려하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박제된 아름다움이었다.
도시는 때때로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공간은 사람의 숨결 속에서 천천히 자라나지만, 어떤 공간은 행정의 도면 위에서 먼저 완성된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의 시간이 쌓이기를 막연히 기다린다.
홍티포구는 지금 그 중간 어디쯤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장지대의 삭막한 풍경은 여전하고 사람은 적지만, 색은 이미 칠해져 있다.
도시는 가끔 이런 장면을 남긴다.
완성되지 못한 기대, 혹은 너무 이르게 도착한, 그래서 당황스러운 화려함.
나는 포구의 끝까지 걸어갔다. 방파제 위에 서서 바다를 잠시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방파제에 부딪혔다.
그 순간만큼은 이곳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구를 나와 다시 공장들 사이 길로 들어서자, 조금 전의 질문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왜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했을까.”
도시를 걷다 보면 어떤 장소는 명쾌한 답을 주고, 어떤 장소는 풀리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잃어버린 무지개를 인공의 페인트로 되찾으려 했던 홍티포구는 분명 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