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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9살 - ASIAN EMPIRE

어서 와, 똥배는 처음이지?

by 송대근
첫 똥배


모든 선박기관사가 기피하는 배가 있다면, 그것은 똥배일 것입니다.


선령이 오래됐거나, 구조상 결함으로 업무환경이 열악하거나, 잦은 기계 트러블이 발생하는 배를 똥배라고 부르죠.


네, 첫 승선을 마치고 한창 휴가를 즐기고 있던 저는 다음 배를 똥배로 배승 받습니다.


사실, 전에 탔던 Lily 호가 좋은 배에 속했기 때문에 한 번은 걸릴 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똥배에는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만큼 경력을 가산해 주는 문화가 있어서, 똥배에서는 진급이 유리합니다.


'그래, 다 사람 하는 일인데 별일 있겠나'


마침 진급생각도 있고 해서, 저는 배승을 수락합니다.


육상의 인사배치와 다르게 선원은 배승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배승거부 뒤에 휴가가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하면 금전적 문제는 생길 수 있겠죠?


각자 상황에 알맞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게 Empire 호에 삼등기관사로 승선하게 됩니다.


승선 당일, 제가 목격한 것은...

오일펌프 실 파손으로 인한 기름비산

분뇨처리장치 진공펌프 고장

메인엔진 피스톤 오버홀 2대분


네^^ 뭐가 많죠?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오일펌프 실 파손으로 인한 기름비산

승선해서 인수인계를 받던 도중, 갑자기 기름펌프가 누유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기관실 온갖 곳에 기름을 흩뿌리는데요,


당시 선박에서 사용하던 기름은 HFO라고 하는, 아스팔트와 같이 꾸덕하고 새깧만 기름이었습니다.


그 기름이 온 천지에 튀어 날리니 선원들은 닦아내기 위해 총동원되었죠.


이 기름은 아무리 문대도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ㅠㅜ


2. 분뇨처리장치 진공펌프 고장

실제사진은... 음... 위생(?) 문제로 생략


네, 쉽게 말해 똥통입니다, 똥통^^


선박에 설치된 화장실은 기차나 비행기처럼 진공방식입니다. 이 진공펌프가 고장 나서 선 내 모든 화장실이 이용 불가한 상황이었는데요.


뭐 작업 자체는 간단합니다. 똥통 속 응가를 마주해야 해서 그렇죠^^


물론, 이런 궂은일은 삼등기관사의 역할입니다.


3. 메인엔진 피스톤 오버홀 2대분

메인엔진은 선박의 프로펠러를 회전시키는, 배 안에서 가장 큰 기계입니다.


3층 건물 정도 높이를 가진 기계인데요. 이 커다란 기계를 정비하는 것은 배에서도 큰일이겠지요?


네, 그래서 보통 이 작업은 1대 분만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 큰 작업을 2대분이나 진행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항해가 바빠서 밀린 작업을 이번에 몰아하는 것이라면 상황이 나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등기관사에게 물어봅니다.


일기사님, 왜 피스톤 오버홀을 두대나 하나요?

저번에 보니 상태가 안 좋아서.


아이고... 마음이 아픕니다...


첫인상에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저는 Empire 호에서 고생깨나 했습니다. 이 배는 과거 화재가 발생했던 배 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선원들끼리는 앰Fire 라고 불렀습니다.


그래도 저는 6개월 정도 삼등기관사로 고생하고 나서 이등기관사로 진급하게 됩니다. 2개월가량은 이등기관사로 근무하고 하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똥배에서는 다양한 경우의 기계고장이 발생하기에 기관사로서 대처능력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육체적 피로도가 가중되지만 급여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 기피의 한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포괄임금제의 한계이기도 하겠네요.


고생 끝에 이등기관사로 진급하긴 했지만, 급여차이는 50만 원 수준 밖에 차이 나지 않아 월 400만 원 저축은 동일했습니다.


[ 29세 자산 440+3200 = 3640만 원 ]


그래도 고생의 결과가 목돈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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