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 엄마로부터, 엄마에게로
공중전처럼 정신없이 돌고 있던 시절,
나는 일을 하느라 아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혼자 있을 아들, 외로울 아들 생각에 가슴이 끊어질 듯 아팠다.
전화할 곳이 없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말 한마디 못 한 채 펑펑 울었다.
그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엄마의 말!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너는 네 아들 때문에 아파서 울지?
그렇게 사는 너를 평생 바라보는 내 맘은 어떻겠니?”
그 말은 지금도 내 가슴 끝을 울린다.
이혼 후 한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부모님은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지금 KTX 탔어.”
엄마의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그날, 식구들은 아버지를 혼자 두고 서울로 올라왔다며 야단법석이었지만
내 차에 올라탄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건.
아들을 낳고 처음엔 몰랐다.
태교가 뭔지,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그저 심신을 달래려 십자수를 놓으며
내 키만 한 이불 하나를 만들던 시절을 보냈을 뿐!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눈을 가진 아들,
세상에서 가장 오똑한 코를 가진 아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를 가진 아들.
태어나자마자 울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그토록 예쁜 아이를 내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축복은 언제나 대가를 동반했다.
아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삶은 이전보다 더 고단해졌다. 결혼 전엔 “따님이 참 예쁘네요”라는 말을 들었던 나였지만, 결혼 후에는 어떤 옷이 내게 어울리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엄마 아버지가 놀러 오신 날이었다.
함께 시장구경을 갔고 피곤함에 지친 나는 가게 앞에서 보채는 아들의 등을 찰싹 때렸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사는 게 힘들어 너희 키울 때 그랬어. 근데 네가 꼭 그 모습이네.”
그 말이 어찌나 미안하던지, 가슴이 먹먹했다.
학원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돈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결국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드렸고,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와 의논하셨다.
그때 작은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떨어져 살면서 좋은 것만 보여드려라.”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시던 날, 나는 한없이 울었다.
내 마음은 다 함께 잘 사는 일이었는데, 그 마음이 자꾸만 엇나가 버렸다.
엄마의 기대주였던 내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마음이 무너졌다.
그날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다.
“너는 네 아들 때문에 아파서 울지? 그렇게 사는 너를 평생 바라보는 내 맘은 어떻겠니?”
그 말이 내 인생의 문장처럼 남았다.
지금은 안다.
아무 일 없이 잘 자라는 자식이라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끝이 아픈 것이 부모라는 걸!
아들을 보고 출근을 했어도, 집에 돌아가면 또 볼 수 있는 아들인데도 틈마나면 아들이 보고 싶었다.
잠든 얼굴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손끝으로, 입술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날들이었다.
그런 어느 날, 엄마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 다음 날 전화를 하셨다.
“나 지금 KTX 탔어.”
식구들이 다들 걱정했지만 엄마는 내 차에 올라타자마자 말씀하셨다.
“니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
그 말을 들었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은 집에서 함께 자고 밥을 먹고있는 아들도 그리운게 엄마마음인데, 그와 같은 내 마음을 엄마는 수백 배로 품고 사셨을 테니까.
나이가 들수록, 몸은 멀어지지만 마음은 더 가까워진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아리며 파고드는 존재, 그것이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