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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Apr 09. 2018

정신을 차려보니 제주였다

스물여섯 휴학생, 제주도에 오다

4학년 2학기, 학교에 덜컥 휴학을 신청했다.


2016년 12월, 군대를 전역하고 곧바로 학교를 다녔다. 시시콜콜한 추억들, 적당한 대학 생활과 적당한 학점을 남기고, 어느새 나는 마지막 학기를 앞둔 스물다섯 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휴학을 마음먹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강신청 기간이면 어김없이 먹통이 되고 마는 학교 포탈 시스템이지만, 휴학 신청만은 클릭 몇 번으로 접수가 이뤄지며 내 충동적 선택을 돌아볼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쾌적함을 보여줬다. 핸드폰에는 어느새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최홍엽 님의 2017년 2학기 휴학 신청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알바를 뛰어 돈을 번다던지, 인턴 경험을 쌓는다던지, 해외여행을 간다던지, 토익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던지, 휴학 이전 다들 하나씩 갖고 있는 목표나 계획이라는 게 당시의 내겐 없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이대로 졸업하면 무언가 큰일이 날 것만 같다는, 형체 없는 불안감을 품고서.


휴학하고 뭐 하려고?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안타깝게도, 이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쉬는 데에도 목적과 계획이 있어야 하냐는 반발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지만, 내 비루한 정신과 몸뚱이는 기약 없는 휴식 안에서 한 없이 나태해져 갔다. 책은 도무지 읽히지 않았고, 글은 좀처럼 쓰이지 않았다. 


짬짬이 운영해 오던 글쓰기 모임을 잠정 중단하고, 나는 다시 습관처럼 새로운 일을 찾아나갔다. '디스이즈게임'이라는 게임 언론사에서 기자로 잠시 일했고, 친구들과 9박 10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의 첫 번째 해외여행을 위해 오사카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스위스 루체른. 2018.02.



2018년 4월, 정신을 차려보니 제주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주도에 있다. '오쉐어'라는 제주도 여행물품 대여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위해서다. 2016년 여름, 론칭 초기 브랜딩을 도와준 것에 이어 두 번째 인연이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창업을 결심하고 제주도라는 타지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데, 내가 가진 짧은 지식과 경험이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효리네 민박'이나 '윤식당', '도시어부' 같은 대리만족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이 순간, 내가 제주도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단순한 일탈로 기능하길 원하진 않는다. '그냥, 쉬고 싶어서' 선택한 휴학이지만, 그냥 쉴 수만은 없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에.


오쉐어 : 제주도 여행자 맞춤 물품 대여 서비스


앞으로도 이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내 이야기, 제주도 이야기, 오쉐어 이야기를 공유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글을 쓰고 있는 나만의 사례가 아니라,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솔직한 청년 스타트업의 이야기로, 판타지 아닌 제주도의 민낯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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