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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Nov 24. 2016

살아가는 이유, 사랑하는 이유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어머니 당신은 제게 생명을 주셨지,

살아갈 이유는 가르쳐주지 않으셨군요.


우리는 났을 적부터 서투른 탓에

좋아하지만 사랑하지 못하고

배우지만 깨달을 줄 모릅니다.

계절이 반복될수록

길을 밝힐 햇빛보다

몸을 누일 그늘을 찾는 까닭도 그러합니다.


식물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당신을 닮은 아침이 밝아오면

어쩐지 나는 떠밀려온 파도처럼

모든 것이 새파랗고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당신이 가꾸어 온,

빨갛고 노랗고 뜨거운 것들을 바라다볼 때면

당신 가슴에는 무슨 바람이 불어오나요.

내 입을 떠난 갈 곳 잃은 언어들이

당신의 들숨과 날숨을 닮아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제는 거리에서 나이 어린 풀잎들이

초록 향기를 내뿜으며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침묵하는 겨울에서조차

사람들 입에서 굴뚝처럼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나는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살아가는 이유를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살아있음을 살갗으로 느끼는 순간,

나는 어머니 당신께서 내게 주신 것이

비단 살덩어리만은 아니라고 짐작해봅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명과 삶에 대한 당신의 근거 없는 믿음을

여전히 나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당신의 곧지 않은 허리와 움츠러든 가슴,

습관처럼 살아가는 당신의 생활을 마주할 때면

어쩐지 서글퍼 보이는 두 쌍의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당신께서 지극정성으로 가꾸고 보살펴온

가장 사랑하는 꽃의 꽃말을

이제는 어쩐지 알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 당신께서 가르치지 않아도

당신께서 건네주신 살아갈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의 살아감과, 나의 사랑함을

언제까지고 당신과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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