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연대기

그래도 한 뼘 자랐다

by StoA
해 질 녘 드리우는 그림자가 제일 기다랗듯이
연말이 주는 세기말의 정서는
나를 그 어느 때보다 그늘지게 만든다.


2013년 연말에 썼던 글이다. 3년이 지난 지금의 연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여전히 나는 우울하다. 아니, 우리는 여전히 우울하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았다고 선뜻 대답할 사람 없어 보인다.

내년은 올해보다 나을 수 있을까.

나는 그 근거를 쉽사리 찾지 못해 대답을 머뭇거린다.

여전히 우리는 우울하다.


위로를 얻기 위해 <어른의 학교>라는 책의 일부를 빌려 쓴다.

부끄럽게도 2012년 연말에 똑같은 부분을 가져왔었다.

나는 이보다 연말에 어울리는 은유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콩나물이, 제가 자라면서 마신 물을 기억하겠느냐고요.
물을 기억하지 못해서 콩나물이 자라지 못하더냐고요.
콩나물이라 하는 것은 결국
콩이라는 씨앗의 소양 위에 이루어진
물의 퇴적이 아니겠느냐고요.
- 이윤기, <어른의 학교> 31쪽 -

퇴적한다는 표현에서 나는 그간의 우울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작년 연말서부터 지금의 연말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퇴적했다.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그 겹겹의 시간들이 일종의 결을 이룰 것이다.

나는 결국 그렇게 24년간 쌓아 올려진 퇴적물이다.

나는 그 퇴적의 과정을 부정할 생각이 결코 없다.


나는 자주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일은 문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써 내려가는 것이라

이것은 아래에서 위로 퇴적해가는 그간의 과정을 역행하는 일이다.

겹겹이 쌓인 층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파고들고 파헤치면서

나는 자주 우울해지지만 동시에 이것을 긍정한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결을 이룸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불안하고 우울하고 막연하다.

2013년의 내가 썼던 것처럼 이 세기말의 정서는 연말인 지금 더더욱 강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12년 연말의 글을 가져와 우울의 연대기를 쓴다.

달콤하든 씁쓸하든 내가 쌓아온 것에 대해,

그래도 한 뼘 자라났다고 긍정할 수 있는 오늘을 위해.


이 시간을 빌어 내년에는 더 좋은 글이 써내려 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