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읍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을 보면 도, 특별시, 광역시, 시, 군, 읍, 면, 동, 리로 나눠져 있고, 이 밖에도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와 같은 행정구역도 있다. 제주도에 오면서 나는 처음으로 읍, 리라는 곳을 내 신분증에 붙이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에는 유독 읍, 면이라는 행정구역들이 눈에 띈다. 읍이지만 면적이 넓은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사람들도 많이 이주해 왔다고 하는데, 과연 제주에는 왜 이렇게 읍, 면이 많은 것일까?
이런 단순한 호기심에서 자료들을 좀 찾아보다가 정리를 하게 되었다.
※ 글 내용에는 공식적인 내용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이 다수임을 밝혀둔다.
제주에는 왜 읍, 면이 많을까?
읍의 기준
먼저 읍의 설치 기준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그 법적 근거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법 7조에 명시되어 있다. 1항과 2항은 시의 설치기준이니 3항과 4항을 보면 된다.
제7조(시ㆍ읍의 설치기준 등)
① 시는 그 대부분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 5만 이상이 되어야 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지역은 도농(都農) 복합형태의 시로 할 수 있다.
③ 읍은 그 대부분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 2만 이상이 되어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인구 2만 미만인 경우에도 읍으로 할 수 있다.
1. 군사무소 소재지의 면
2. 읍이 없는 도농 복합형태의 시에서 그 면 중 1개 면
④ 시ㆍ읍의 설치에 관한 세부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즉, 기본적으로 인구 2만 명을 기준으로 읍을 설치하며, 5만 명을 기준으로 시를 설치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여기에 지방자치법 시행령의 내용을 보면 인구수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시행령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7조(시ㆍ읍의 설치기준)
① 법 제7조 제1항에 따라 시로 되려면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개정 2008. 2. 29., 2013.3. 23., 2014. 11. 19., 2017. 7. 26.>
1. 해당 지역의 시가지를 구성하는 지역 안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일 것
2. 해당 지역의 상업ㆍ공업, 그 밖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60퍼센트 이상일 것
3. 1인당 지방세 납세액, 인구밀도 및 인구증가 경향이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일 것
② 법 제7조 제2항 제2호 및 제3호에 따라 도농 복합형태의 시로 되려면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1. 해당 지역의 상업ㆍ공업, 그 밖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의 비율이
군 전체 가구의 45퍼센트 이상일 것
2. 다음의 식으로 계산한 해당 군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군 재정자립도의 평균치 이상일 것
{(지방세+세외수입-지방채)÷일반회계 예산} × 100
③ 법 제7조 제3항 본문에 따라 읍으로 되려면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1. 해당 지역의 시가지를 구성하는 지역 안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일 것
2. 해당 지역의 상업ㆍ공업, 그 밖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40퍼센트 이상일 것
이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일정 비율 이상 모여 살아야 하고,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배운 2차 산업, 3차 산업의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시가 되려면 60%, 읍이 되려면 40% 되어야 한다.
제주에는 시로 승격될 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제주도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외에 읍은 시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든 행정구역별 인구를 다 쓰기에는 너무 많고, 상위 읍면동 현황은 아래와 같다.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구가 많다고 생각되는 애월읍도 5만 명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 국제학교가 생기면서 이주민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되는 대정읍도 2만 명을 조금 넘긴 수준이라 5만 명이라는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구가 5만 명을 넘겨도 시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산업별 인구 분포다. 상업, 공업, 그 외 도시적 산업에 60% 이상 종사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인 것이 제주도에는 아직도 농업, 어업, 축산업과 같은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이 낮지 않기 때문이다.
5만을 넘어도 시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을 찾았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인구가 5만을 훌쩍 넘긴 대규모 읍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 이유는 1995년에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시에도 읍, 면을 둘 수 있기 때문인데, 1995년 이전에는 시에는 동만 둘 수 있고, 군에는 읍, 면만 둘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래서 5만 이상의 읍이 시로 승격되면 기존의 군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시로 승격했는데, 이러다 보니 행정구역이 지나치게 쪼개지고, 생활권이 분리되기도 했다. 그리고 대규모의 읍이 빠져나간 군은 빈 껍데기가 되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시 승격은 군 전체가 시로 승격되고, 해당 읍만 몇 개의 동으로 쪼개지는 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신기한 건 군 지역의 인구 5만 이상 읍에 대해 시로 승격하는 조항은 있지만, 시에 속하는 인구 5만 이상의 읍에 대해 시로 승격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1955년 북제주군 제주읍이 제주시가 되었고, 2006년에는 북제주군을 통합한 제주시가 되었다. 1981년에는 서귀읍과 중문면이 서귀포시로 승격되었고, 2006년에 남제주군을 통합한 서귀포시가 되었다.
여기서 신기한 건 북제주군은 예전에 북제주군 아래에 있던 읍에게 거꾸로 흡수통합이 된 것이고, 서귀포시는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자치시에서 행정시로 격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귀포시가 되었던 서귀읍은 정의현, 중문면은 대정현에 속했던 지역이다. 지금으로 보면 서로 다른 시, 군에 속한 지역 둘을 하나로 합쳐 놓은 셈이다.
또 다른 문제점들
하지만 조건이 다 갖추어져도 시 승격을 자체 거부하는 사례들이 많다. 왜냐하면 기존 읍면 지역으로 누리던 세금 혜택, 대입 농어촌 특례 등의 혜택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시 승격에 따라 동 지역으로 전환되면 새로운 시에 속하게 된다는 이름값이라도 얻었지만, 지금은 혜택만 사라지는 상황이라 기존 읍면 존치를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법률적으로도 동 지역 전환 및 분동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도 없다고 하니 방법은 없는 모양이다.
어떤 글에 명시한 읍면지역 혜택을 보면 ㅎㄷㄷ 하다. (출처 : https://cafe.naver.com/starfed/12543)
1. 건물 재산세 0.5%에서 0.25%로 인하
2. 토지 재산세 0.2~0.5% 를 0.07%로 인하
3. 건강보험료 22% 감면, 농어업인은 50% 감면
4. 고교 수업료 인하 (연간 137만 1600원 → 89만 1600원)
5.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 부여(정원 4%를 별도 선발)
6. 경유차 환경개선 부담금 배기량 1cc당 1.74원에서 0.8원으로 인하
7. 학자금 무이자 대출
8. 초중고 교사 가산점 부여로 우수교사 지원
9. 유치원 수업료 감면 (연간 36만 원 → 20만 1천600원)
10. 보육시설 차량 운영비, 보육시설 보육 돌봄 서비스 제공
11. 읍면 소재의 약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약을 조제 가능
12. 교육부의 '농산어촌 연중 돌봄 학교' 지원과 관련, 교육부는 면 단위 행정구역의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와 병설 유치원에는 특별교부세 지원
13. 면 지역의 경우 건축물에 대해 적용되는 건축법 중 대지와 도로와의 관계,
건축선에 의한 건축제한 등 제한요건 완화만 적용
14. 농어촌지역 전용면적 50평방미터 이하 주택은 취득세 감면에 5년간 재산세 면제
15. 읍면 지역 주택 구입 및 건축 시 연 2.7%(경노 2%) 금리로 대출 가능
16. 읍의 인구가 폭증하여도 행정구역 개편은 불가능하여, 시골에서나 적용할 행정기구와 인력으로
제대로 된 행정이 불가능해지는 사태가 벌어지자 동지역의 행정복합센터가 함께
업무를 관할하게 되어 업무는 보되 동시설의 운영비는 동의 예산으로 충당
2018년도 게시물이니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외에도 더 있다고 하니 시 승격을 포기할 만도 하다.
결론적으로 제주도에는 인구 5만명 이상을 달성한 지역도 없거니와 5만명이 넘어도 독립적으로 분리해 시 승격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그리고 설사 시 승격이 되더라도 주민들이 반대하지는 않으려나? 사실 나도 제주로 이사하면서 대정읍 보성리에 살고 있지만, 내가 피부로 느낄만한 혜택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시골에 살고 있구나 정도만 느껴지고,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이 없음을 실감할 뿐이다. 어찌 되었든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니, 그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참고자료 : 제주특별자치도, 통계청, 나무 위키 (읍, 면), 블로그,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