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 1번 출구 앞 계단에는
출근하는 인파가 몰려드는 시간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침낭을 정리하는
중년의 남성이 있다.
무언가 중얼거리지 않고,
손 내밀어 푼돈을 바라지 않고,
주변에는 술병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나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나는 궁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더 그의 행색을 살피며
그의 과거를 추리해 보기로 한다.
그는 어쩌면 성공한 사업가였다가
이 끔찍한 불황의 일격을 맞고
이곳에 침몰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으로
마음의 고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초점을 잃지 않은 눈동자와
불편해 보이는 구석이 없는 신체와
때가 타기는 했지만
일반인과 비슷한 평상복 차림이
추리의 근거이다.
나의 추리가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지만
다가가 말을 걸어 볼 용기가 없어
더 이상의 관심은 가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핑계를 대며
발걸음을 빨리해 출구를 나선다.
그가 누운 바닥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지 못하는 나는
그의 이력을 함부로 단정할 자격이 없다.
다만 이 망할 놈의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의 자리에 내가 놓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추위가 한층 누그러졌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아침 공기가 사무치게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