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의미를 되새기다
요즘 잘 나가는 청춘 배우. 의욕 충만과 이론 백단의 대조적 한 쌍이 좌충우돌하는 버디 무비. 여기까지만 봐도 나머지 그림이 뻔히 그려지는 영화. <청년경찰>의 예고편을 본 소감은 그랬다. 그래도 뭔가 다른 게 있겠지 하면서 찾다 보니 ‘청년’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 의미를 찾아봤다.
청년의 역사는 짧다. ‘청년’이란 말은 1896년 도쿄 유학생들의 잡지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1898년 이른바 ‘청년애국회’ 사건 이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1898년 7월 1일 정부와 학교, 《독립신문》 등 주요 기관에 ‘대한청년애국단’ 명의로 황태자의 대리 청정 등을 요구하는 편지가 배달된 사건이다. 그러다가 1903년 10월 28일 선교사 언더우드와 길레트의 주도로 서울에 황성기독청년회라는 이름으로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가 탄생한 이후 사용되기 시작했다.
월남 이상재는 처음에 ‘청년’이란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전택부는 “그 이유는 첫째로 월남은 그때 처음으로 ‘청년’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독립협회의 ‘독립’이란 말을 처음으로 듣고 놀랐던 것처럼 청년이란 말은 새 말이요 새 개념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한국에는 소년(少年)이나 장년(壯年)이란 말은 있었으나 청년이란 말은 없었다. 한국 사람은 소년으로 있다가 장가를 들면 대번 장년이 되고 말았다. 이를테면 한국 사람에게는 청년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일찍이 늙어 버리고, 허세만 부리다가 죽고 말았던 것이다.”
‘청년’은 일제 강점 후 퇴조했지만, 1920년부터 《동아일보》와 《개벽》에는 문화운동의 주역으로서 ‘청년’을 부각시키는 기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다시 붐을 맞게 되었다.
청년은 ‘새로움’과 ‘신문명’의 건설을 의미했다. 기성세대 및 그들의 가치관으로부터 단절하는 것은 청년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청년을 연령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동아일보》 1920년 5월 26일자는 “사회의 동적 방면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자가 청년이오 정적 방면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자는 노년”이라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일부 청년회는 회원 자격을 45세까지로 했다.
-《선샤인 지식노트》, 강준만, 인물과사상사(2008)
‘청년’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만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김주환 감독의 <청년경찰>은 기성세대 및 그들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청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는 나이는 어리지만 ‘청춘’이라고 부르기에는 세상의 질서에 길들여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이는 많지만 세상의 부조리함에 순응하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그 양자의 사이에서 주인공인 기준(박서준 분)과 희열(강하늘 분)은 생동하고 성장한다. 청년의 정신과 열정을 자양분 삼아서.
기준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그는 등록금이 지원된다는 이유로 경찰대학에 진학한다. 왜 경찰이 되고 싶은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채로. 본성이 착해서 남 돕는 일을 잘한다. 입학의 당락이 걸려 있는 등반 훈련에서 부상당한 희열을 업고 다닐 정도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을 배워 온 우리들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절차를 따지고 자신만을 챙기면서 주변 이웃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세상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퇴학이라는 자기희생도 감수한 채 그는 세상과 싸우기를 선택한다. 힘든 싸움을 계속하면서 그는 경찰이 되어야 할 이유를 찾는다. 소외된 약자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는 경찰이 되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동기들 중 일부는 뒷자리를 독점하고 아예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저러려면 왜 이 과에 들어왔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답은 뻔하지 않았을까? 대학을 간 이유가 취업, 즉 먹고살기 위해서였으니까. 전공 공부를 하든 취업 준비를 하든 중요한 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무엇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꿈은 ‘〇〇이 되는 것’으로 단순화된 것이 아닌가? ‘〇〇’의 자리에는 돈을 잘 벌거나 인식이 좋거나 안정적인 직업이 채워져 왔고. 기준의 성장이 대견한 것은 ‘〇〇’ 앞에 들어갈 수식어를 찾아서이다. ‘약자를 지켜주는’이라는 목적의식. 청년의 가치관으로 손색없다.
희열은 마장동에서 잘 나가는 고깃집의 아들이다. 든든한 지원 속에서 과학고까지 나온 수재이다. 그런 그가 경찰대학에 지원한 이유는 특별해지고 싶어서이다. 과학고 동기들은 다 KAIST를 갔으니까. 그토록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할 정도로 희열은 자기애가 강하다. 자기애적 성격이 강한 사람은 주변을 수단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희열도 마찬가지다. 등반 훈련에서 부상을 당한 희열은 한우를 먹여주겠다는 거래를 기준에게 제안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그래서 어설퍼 보이는 무술 교관의 시범이 시시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희열도 약자들을 위한 싸움을 거치며 성장한다. 무술 교관의 가르침이 실제 상황에서도 먹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깜놀’한다. 경찰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을 활용하여 약자를 지키는 싸움에서 승리한 희열. 그는 학교에 더 남아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자기애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는 자신이 배운 것들로 타인들을 돕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잠을 자고 학원에서 시험 기술을 배우는 우리들. 배움을 점수를 따기 위한 수단으로 치부한다. 희열의 깨달음은 모든 배움에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기성세대의 금전적 가치관에서 볼 때, 실용적이지 않는 학문이라도 어딘가 쓰일 데가 있다는 사실. 배움을 대하는 청년이 명심해야 할 진리이다. 현실적인 실용성을 따지기보다는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목적과 성취가 존재하는 ‘청년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계몽 영화를 소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청년경찰>은 전혀 그런 영화가 아니다. 기준과 희열은 <엑설런트 어드벤처>의 빌(알렉 윈터 분)과 테드(키아누 리브스 분)에 버금가는 병맛 케미를 보여 준다. 거기에 조선족 패거리와 주인공들의 격투씬은 80년대 성룡 영화의 액션처럼 유쾌하고 아기자기하다. 오락 영화로서의 매력이 한껏 넘쳐난다. 여기에 어설픔과 진지함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박서준, 강하늘 연기가 더해져 바탕이 튼튼한 영화다. 아참, 그리고 또 하나의 볼거리. 두 배우의 몸이 참 좋다. 특히 박서준의 근육을 보자니 당장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뿐만 아니라 몸도 ‘청년’이고 싶은 아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