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 <대홍수>
주말 저녁, 넷플릭스 메인 화면을 장식한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예고편을 보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고 상상해 보자. 거대한 물줄기가 아파트를 집어삼키고, 김다미와 박해수라는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배우들이 사투를 벌인다. 당연히 우리는 <해운대>의 긴박함이나 <엑시트>의 재기발랄한 탈출극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 <대홍수>는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기대를 아주 당혹스럽게 배신한다.
공개 직후 글로벌 차트 1위를 휩쓸었음에도 유독 한국 커뮤니티에서 “속았다”는 평이 많았던 이유는 명확하다. 이 영화는 시원하게 터지고 부서지는 전통적인 재난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좁은 아파트라는 폐쇄 공간 안에서 똑같은 상황을 수만 번 반복하는 ‘퍼즐 게임’에 가깝다. 하지만 잠시 그 배신감을 내려놓고 시선을 살짝만 틀어보자. 만약 이 영화를 단순한 재난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배우기 위해 분투하는 어느 인공지능의 처절한 성장기’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보는 순간,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물에 잠겨 고립된 아파트 단지다. 하지만 비평적 시선으로 이 공간을 들여다보면, 이는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구축된 ‘가상의 시뮬레이션 공간’과도 같다.
주인공 안나(김다미 분)는 이 공간 안에서 최적의 결괏값을 도출해야 하는 일종의 AI 에이전트 혹은 고도로 진화된 모델의 투사체다. 영화 초반, 안나는 유능한 연구원이지만 타인에게 심지어 아이인 자인(권은성 분)에게조차 다소 무심하고 건조한 태도를 유지한다. 개발자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녀는 지능과 상황 판단력이라는 파라미터는 충분히 입력되어 있으나 ‘희생’이나 ‘공감’이라는 가중치가 아직 설정되지 않은 초기화 상태의 모델인 셈이다.
이 거대한 실험을 주도하는 외부 세력(박해수가 연기하는 ‘희조’를 포함한 연구진)이 지구 최후의 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한 이유는 명확하다.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살아남을 신인류에게 이식할 가장 숭고하고 복잡한 데이터, 즉 ‘사랑’과 ‘모성애’를 추출하기 위함이다. 그들에게 차오르는 물은 재앙이 아니라 모델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여 잠재된 데이터를 끌어내기 위한 ‘부하 테스트’ 변수들인 것이다.
관객을 가장 큰 혼란에 빠뜨렸던 타임 루프 설정은 머신러닝의 ‘반복 학습’ 과정으로 치환할 때 비로소 논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안나는 무려 2만 번이 넘는 시간 동안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나 하나 살기도 벅차 이웃을 외면하고, 아이를 챙기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알고리즘이 정답을 찾지 못하고 오류를 범하는 초기 단계다.
하지만 수만 번의 죽음(실패)을 통해 안나의 알고리즘은 정교해진다. 그녀는 깨닫는다. 혼자 도망가는 것보다 타인과 협력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자인’을 지키는 것이 이 가혹한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승리 조건’임을 말이다. 그녀의 행동이 점차 이타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캐릭터의 성격이 갑자기 착해져서가 아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희생'이야말로 가장 최적화된 생존 전략임을 데이터로 검증했기 때문이다. 김다미 배우의 눈빛이 무색무취한 관찰자에서 절박한 수호자로 변해가는 과정은 차가운 픽셀 위에 인간의 체온이 덧입혀지는 인공지능의 고도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낸다.
여기서 서사적으로 가장 흥미롭지만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아이 ’자인'의 존재다. 위급한 상황에 화장실을 찾거나 말없이 사라져 위기를 자초하는 자인의 행동은 보는 이들의 혈압을 올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AI 학습의 관점에서 자인은 안나의 학습을 방해하는 ‘노이즈(Noise)’이자 그녀를 더 강하게 훈련시키는 필수적인 변수다. 만약 자인이 기계처럼 말 잘 듣는 아이였다면 안나는 너무 쉽게 정답을 찾았을 것이고 진정한 의미의 인내와 사랑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자인의 예측 불가능한 돌발 행동들은 안나라는 AI가 어떤 최악의 변수 앞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단련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불협화음이야말로 안나를 단순한 계산기에서 ‘마음을 가진 존재’로 도약시키는 결정적인 훈련 데이터였던 셈이다.
결국 안나가 그 지옥 같은 루프를 탈출하는 열쇠는 최첨단 무기도, 초능력도 아니었다. “자인이는 무서우면 옷장에 숨는다”는, 아주 사소하고 개별적인 ‘기억’ 하나였다.
여기서 우리는 ‘데이터’와 ‘기억’의 결정적인 차이를 목격한다. 데이터는 통계적인 수치와 패턴에 불과하지만, 기억은 특정한 대상과의 정서적 교감을 전제로 한다. 수만 번의 루프 끝에 안나는 자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단계를 넘어 자인의 내면을 상상하고 공감하기 시작한다. 옷장 문을 열고 아이를 마주하는 그 찰나, 안나는 더 이상 시뮬레이션 속의 에이전트가 아니다. 그녀는 통계적 최적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목숨을 건 ‘비합리적 선택’을 감행한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자아를 형성하는 ‘특이점’의 순간이며, 안나가 튜링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처럼 김병우 감독은 가장 차가운 기술인 인공지능을 통해 가장 뜨거운 인간의 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부,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안나의 존재론적 위치는 모호하다. 그녀는 진짜 인간인가, 아니면 완벽하게 인간을 흉내 내는 기계인가?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숭고한 선택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대홍수>는 겉으로는 재난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2만여 번의 실패를 딛고 완성된 어느 영혼의 처절한 탄생기다.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목격한 것은 물속에 잠긴 아파트의 풍경이 아니라, 억겁의 시간 속에서 단 하나의 사랑을 학습해 낸 인격체의 위대한 로그 기록이다. 혹시 처음 보았을 때 그 난해함에 실망했다면, 이번에는 안나라는 존재의 성장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 다시 한번 감상해 보길 권한다. 그때 비로소 물에 잠긴 그 차가운 공간은, 한 존재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거대한 ‘양수(羊水)’로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