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가랜드, <시빌 워>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스스로 뛰어난 사진사라고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다른 사람들이 ‘사진 좋다’라고 칭찬해 주는 사진들이 있다. 바로 아이들을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사진에는 찍는 사람이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 담긴다는 말처럼 피사체인 아이들에게 느끼는 아버지로서의 관심과 사랑이 특별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주로 찍는 나에게 사진 찍기란 아주 행복한 작업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사진 찍기가 아주 고통스러운 작업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알렉스 가랜드의 <시빌 워>에 등장하는 종군 기자가 바로 그들이다.
<시빌 워>는 붕괴하는 국가의 잔해보다 그 참상을 기록하는 종군 기자들의 닳아 버린 내면을 비추는 데 집중한다. 특히 베테랑 사진기자 ‘리(커스틴 던스트 분)’의 인간성 회복과 신참 ‘제시(케일리 스패니 분)’의 잔혹한 성장은 영화를 지탱하는 두 축이다. 이들의 여정은 ‘대통령 인터뷰’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끝에서 두 인물은 서로의 처음과 끝을 뒤바꾸며 윤리가 증발한 자리에 남은 기록의 본능을 드러낸다.
베테랑 리는 수많은 전장을 겪으며 내면이 닳아 버린, 지독하게 냉소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참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유일한 방패이자 방어 기제이다. 리는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전문적인 무관심을 설파하며 이미지의 객관성 뒤에 숨어왔다.
하지만 조국에서 벌어진 내전은 그녀가 평생을 바쳐 보내온 경고들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깊은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심리적 균열은 멘토 새미(스티븐 헨더슨 분)의 죽음을 통해 임계점에 도달한다. 리는 동료의 죽음마저 결정적 순간으로 포착해야 하는 기자의 숙명을 거부하고 자신이 찍은 새미의 사후 사진을 스스로 삭제한다. 이는 그녀가 평생 고수해 온 ‘객관적 기록자’라는 외피를 벗어던지고 고통받는 ‘인간’으로 회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다.
반면, 신참 제시는 리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동시에 리가 버린 냉혹함을 흡수하며 각성한다. 영화 초반부의 제시는 피사체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낼 전문적인 심리적 방어벽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가 쥔 구식 수동 카메라 ‘니콘 FE2’는 피사체를 정밀하게 응시해야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장비로, 이는 역설적으로 대상의 고통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그녀의 연약함을 부각한다.
그러나 붉은 선글라스를 낀 채 집단 학살을 자행하는 인종차별적 병사(제시 플레먼스 분)와 마주하며 겪은 극한의 위협은 제시의 내면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동료들이 처형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죽음의 구덩이에 빠지면서 겪은 절망적 공포는 역설적으로 그녀의 생존 본능을 카메라라는 유일한 도피처로 몰아넣는다. 공포가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마비시킨 자리에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장의 긴박함이 주는 기묘한 아드레날린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제시는 이 파괴적인 흥분에 중독되며 고통을 느끼는 자에서 그것을 ‘완벽한 피사체’로 박제해 내는 비정한 기록자로 변모한다.
두 인물의 대비는 마지막 백악관 시퀀스에서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극대화된다. 리는 최고의 특종을 잡을 수 있는 순간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제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다. 이는 이미지보다 인간의 생명을 선택한 구세대 저널리즘의 마지막 저항이자 숭고한 희생이다.
하지만 리가 제시에게 “나처럼 무감각해지지 마라”라고 경고하며 제시의 인간성을 끝내 지키려 했던 노력은 허망한 결말로 이어진다. 역설적으로 리가 숨을 거두는 찰나, 제시는 슬퍼하는 대신 그 죽음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리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이 자신이 그토록 막고자 했던 ‘냉혹한 괴물’이 되어버린 제시의 눈이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던지는 공포스러운 아이러니이다. 제시는 리의 희생을 딛고 대통령의 처형 순간까지 무표정하게 기록하며 리가 잃어버린 자리를 비정한 방식으로 계승한다.
영화의 배경으로 깔린 미국의 내전은 이러한 인물들의 심리적 전이를 가속화하는 동력이다. 가랜드 감독은 내전의 원인을 친절히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이념적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기록하는 행위’가 초래하는 인간성의 마모에 집중하게 한다. 전쟁의 소음이 극대화된 사운드 디자인과 생생한 핸드헬드 촬영은 관객을 전장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으며 기록자가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몸소 체험하게 한다.
결국 <시빌 워>는 리가 인간성을 회복하며 파멸하는 과정과 제시가 인간성을 상실하며 완성되는 과정을 교차시키며 이미지의 범람 속에 매몰된 현대 저널리즘의 비극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아버지인 나의 셔터는 사랑을 담지만, 제시의 셔터는 인간성을 지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