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위한 액션 국밥

데이비드 에이어, <워킹맨>

by 박재우

“제이슨 스타뎀의 신작이 올라왔네. 같이 볼까?”

“아니, 대충 보니까 이전 영화들하고 줄거리가 똑같던데. 아빠 혼자 봐.”


며칠 전 아들과의 대화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워킹맨>의 시놉시스를 보니 아들의 말 그대로다. 뻔한 캐릭터와 안 봐도 본 것 같은 사건의 전개. 게다가 실베스터 스탤론이 원작 소설의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고 하니 ‘아재 액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래도 스타뎀의 영화니까 시원한 맛이라도 있겠지 하며 나홀로 관람을 감행했다. 결과는 “재미있었다.” 깔 거리가 수두룩하게 넘쳐나는데 그래도 ‘재미있는걸’ 하게 되는 이유. 무얼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아들의 지적은 정확했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워킹맨>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은퇴한 특수요원, 납치된 지인의 딸, 무능하고 타락한 공권력, 그리고 봉인 해제되는 살인 본능. 이 영화는 마치 80~90년대 비디오 대여점 시절 액션 영화의 공식을 AI에게 학습시켜 출력한 결과물 같다. 이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게으른 동어반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재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은 2026년이다. 우리는 멀티버스가 얽히고설킨 히어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정주행을 통한 복습을 해야 하고 사회적 메시지(PC)가 가득한 영화를 보며 도덕적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피로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은 또 어떤가. 기후 위기, 경제 불황, 기술의 급변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난제들이 우리를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서 <워킹맨>의 ’뻔함‘은 단점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명확하고, 나쁜 놈은 반드시 처단된다. 복잡한 현실에서 도망쳐 마주한 화면 속의 직선적인 서사는, 과부하 걸린 현대인의 뇌에 주어지는 달콤한 휴가와도 같다. 예측 가능한 결말이 주는 안정감. 참, 편안하다.


영화의 제목이 <워킹맨(A Working Man)>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이슨 스타뎀은 이 영화에서 건설 현장 노동자로 등장한다. 그는 땀 흘려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른다. 그리고 악당을 처단할 때도 총기보다는 현장에 널린 함마나 네일건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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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노동의 가치가 AI에 의해 대체되는 흐름 속에서 이 ‘육체성’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클릭 한 번으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거나 드론으로 폭격하는 비대면의 시대에 내 주먹으로 직접 악의 실체를 타격하는 스타뎀의 액션은 원초적인 쾌감을 자극한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투박하고 거친 연출은 이 아날로그적 질감을 극대화한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튀는 땀방울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인간의 몸이 가진 힘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것은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 액션이다.


마지막으로, ‘아빠’여서 나는 이 영화에 더 큰 쾌감을 느꼈다. 영화 속 레본 케이드(제이슨 스타뎀 분)는 사회적으로는 은퇴한 블루칼라 노동자이다. 변변한 거처도 없고 끼니도 잘 챙기지 못하는 초라한 형편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자 그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해결사로 변모한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장년층 남성들의 판타지를 정확히 조준한다. 기술도, 문화도 너무 빨리 변해버린 세상에서 “나도 아직 쓸모가 있다”, “내 가족 하나는 내 손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 <워킹맨>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비록 현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햄버거 가게의 키오스크 사용법을 물어봐야 할지언정, 영화 속 스타뎀에 아빠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감정을 이입하는 110여 분 동안만큼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강력한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말대로 뻔하긴 한데, 재미있더라. 아빠는 가끔 이런 낡고 투박한 것들이 주는 위로가 필요해.”


<워킹맨>은 ‘흑백요리사’에 등장할 만큼 새로운 요리는 아니다. 하지만 배고프고 지친 날, 아무런 고민 없이 숟가락을 들 수 있는 뜨끈한 국밥 같은 영화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이렇게 단순하고 무식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워킹맨’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뻔한데 왜 재미있냐고? 그 뻔함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확실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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