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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14. 2024

진도의 첫 밤

진도 여행 이야기 (7)

정상은 지난 4월에 이 집을 산 후 겨우 두세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 정상이 서울에서 이곳까지 자주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집은 내내 비어 있는 상태였고, 생활 도구들도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먼지 쌓인 바닥 청소부터 했다. 허리 아파서 수그릴 수 없다고 (엄살 피우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면서 열심히 마루 바닥을 닦았다.


과거에 새마을금고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거실은 꽤 넓었다. 안 쪽에는 부엌이 있고, 그 옆에 매우 커다란 욕실 겸 화장실이 있었다. 그 외에 과거에는 사무실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침실이 된 방이 있었고, 주차장에서 들어오는 입구 옆에도 조그만 창고가 있었다. 거실이 넓어서 나중에 한 부분을 침실로 만들 계획도 있다고 정상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침실 두 개가 있는 근사한 붉은 벽돌집이 될 것이었다. 과거에 새마을금고였던 정상의 집 앞에 동백나무가 있어서 우리는 그의 집을 '동백나무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가 정상의 집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집 입구에 이불 소포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정상은 우리가 진도로 여행을 오는 것에 대비했던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여행 전에 자기 부인과 상의하여 동대문시장으로 가서 급히 이불을 구매하여 배달시킨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행 오는 것만 생각했지, 잠자리와 이불에 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도 않았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 있을까. 나는 정상의 부인을 본 적이 없지만 감사함을 표시했다. 정상은 우리 여행을 위해서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숙소와 새로운 이부자리까지 마련해 놓았던 것이다. 말이 그렇지 그런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친구들이 이 여행을 위해 쏟은 정성을 다시 생각했다. 한 사람은 자기 차를, 또 한 사람은 자기 집과 새 이불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하필 최고로 무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내 일정에 맞춰서 여행을 온 것이었다. 무척 고맙고 소중한 친구들이다. 우리는 배달된 소포를 뜯어서 새 이부자리를 바닥에 깔았다. 새 이불은 기분 좋게 뽀송뽀송했다.


청소를 마친 후, 우리는 드디어 진도의 첫 밤을 보낼 거실 마루에 상을 놓고 둘러앉았다. 온종일 먼 거리 여행을 와서 비로소 쉬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맥주와 막걸리와 과일과 과자 등이 상 위에 놓였다.

래, 여행은 이 맛이지!

막걸리를 마시는 친구들의 웃음 짓는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진도에는 특히 울금 막걸리가 유명하다. 울금이 섞여서 막걸리 색깔이 노르스름했다. 작년에 1박 2일 여행이라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꼈지만, 이번에는 2박 3일이라 우리는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예상치 않은 대화!

모두 둘러앉아서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재관은 이런 여행을 왜 단체 카톡 방에 공지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멀리 좋은 여행을 하는 김에 널리 알려서 다른 친구들까지 함께 올 모여서 여행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동기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이 일종의 도리 아니냐는 말이다. 그것은 일견 맞는 말인 것 같지만 향숙이나 정상이 생각하는 여행과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재관의 말에 대해 잠시 침묵한 후 정상이 먼저 대답했다. 그는 이런 여행이 친한 친구 그룹에서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라 굳이 단체 카톡 방에 알릴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작은 희선처럼 같은 과 동기가 아닌 친구도 함께 하는 마당에 우리 동기 단톡 방에 알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희선의 친구인 향숙도 정상의 의견에 동조했다. 정상은 규범과 자전거 여행을 자주 다녔었는데, 이번 여행은 그 모임이 확장된 형태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기는 하다.

사람마다 친한 이들이 다르고, 서로 다른 인연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여행 가는데 굳이 단체 카톡 방에 알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비록 내가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김에 이뤄진 여행이지만, 설사 내가 없다 해도 정상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진도로 여행 왔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대화에서 다시 깨닫는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여행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만드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고의 여행은 역시 마음 맞는 사람끼리 여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 여행은 저절로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오래갈 수 있는 추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런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두고두고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 그때, 젊고 싱그러웠던 그때, 정말 재미있게 여행했었어." 그렇게 기억하는 재미있는 여행은 어디로 갔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갔던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남긴 아름다운 감정과 경험이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유럽이나 남미의 어느 곳으로 여행 다녀왔다고 자랑스레 하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 여행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어야 하며 일생에 자주 있지 않은 경험이기에 그렇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여행을 누구와 함께 갔는지, 또 그들과 어떻게 재미있게 보냈는지일 것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서 여행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극일 수도 있고 잊을 수 없는 행복일 수 있다. 


재관은 오랫동안 우리 동기 모임에서 각종 경조사와 모임 행사 등을 알리는 '반장'과 같은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아마도 그 같은 배경에서 이런 여행조차 여러 친구들에게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고 함께 하려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재관이 제기한 작은 토론은 예상치 않은 곳으로 귀결되었다. 앞으로 동기 친구들이 같이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모임을 활성화하자는 의견이었다. 봄가을에 한 번씩 하루짜리 여행이라도 여러 친구들이 모여서 간다면 좋다는 것이다. 이제 점차 은퇴하는 친구들도 늘어나는 마당에 좋은 계획일 듯했다. 둘러앉은 우리는 물론 모두 좋은 계획이라고 동의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말이 그랬다는 것이지, 그런 논의가 실제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계획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냥 누군가 여행 가자고 말하고 동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모여서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이 들어서 그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그런 것은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나 쉽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는 그렇게 쉽게 말하고 쉽게 모이는 것이 당연하고 가능하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자주 만난 적도 없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오랫동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위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동기동창이라는 이유로 쉽사리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창회를 한다 해도 나오는 사람들은 매우 적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낯설어서 못 가고, 모임 날짜에 다른 일이 있어서 못 가고, 모이는 장소가 너무 멀어서 못 가고, 동창 중에 누군가는 만나고 싶지 않아서 못 가고, 하필 요즘 자신의 삶이 곤궁하고 피폐해져서 타인들 앞에 나서기 싫어서 못 갈 수도 있다. 모임이 있다 해도 안 가거나 못 가는 이유는 무척 많다.


하물며 하루짜리라 해도 여행은 어떻겠는가.

그런 가운데서도 굳이 함께 여행하기 원한다면, 누군가는 애써 시간을 내어 여행을 계획하고, 공들여서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부탁하는 것처럼 참여를 요청하거나 재촉하고, 여행이 엉망이 되지 않도록 세부사항을 준비하고 조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누군가가 애써 공들여서, 또 굳이 힘들여, 더욱이 세부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남다른 지도력과 부지런함과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부정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년 새 온라인 채팅방이 활성화된 후에 한 해에 한두 차례 동기 모임이 생기는 마당에 겨우 하루짜리 여행이 불가능할 까닭은 없을 듯하다. 그러다가 마음 내키면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더 긴 여행도 이루어질 것이다. 어차피 모든 모임에는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만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정상도 재관도 굳이 단체채팅방에 계획을 올려서 함께 여행할 사람을 찾고 여행 계획을 추진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그날 밤 우리가 계획에 합의했다고 말하는 것은, 엉뚱하게 시작된 토론을 뭔가 점잖고 합리적으로 종결시키려는 형식적인 대화 같이 들렸다.




정상은 자기 집에 옥상이 있다고 했다. 거기로 올라가는 계단은 바깥에 있었다. 거기 올라가면 혹시 마을이 잘 보일까 생각한 향숙이 나에게 올라가 보자고 했다. 향숙과 나는 밖으로 나가서 집 옆에 있는 계단으로 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오랫동안 아무도 다니지 않아서 거미줄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는 기꺼이 거미줄을 헤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저 평평한 옥상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의 여러 집 지붕들이 희끄무레하게 보였지만, 캄캄한 하늘과 땅이 닿은 곳이 어딘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옥상은 높지 않아서 멀리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옥상은 넓고 평평했으므로, 나중에 그늘막이라도 쳐놓고 평상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고기 구워 먹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왜 바깥에 있을까.

한국의 주택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주로 집 밖에 있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생각된다. 집 안 거실이나 부엌에 계단을 설치하면 옥상으로 올라가기가 더 쉽고 이용하기도 편할 텐데, 굳이 바깥에 계단을 설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고등학교 때 살던 양옥의 옥상은 바깥이 아니라 실내에 있는 부엌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부엌에서 올라갈 수 있으므로 그런 구조가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주 예외적인 건물이 아니라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거의 모두 집 안에 설치되어 있다. 계단이 집 밖에 설치되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것은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 우리 집 옥상에 타인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고 두려운 일이다.


미국의 도시에서도 5,6층 정도 건물 외벽에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도 있다. '비상계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파트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할 때 주민이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탈출하기 위한 통로이다. 그러므로 그런 계단은 반드시 창문에서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옥상에서 2층 정도까지만 설치되어 있다. 즉 웬만해서는 바깥 거리에서 곧바로 비상계단으로 올라갈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그 철제 계단은 건물 외벽에 위태롭게 붙어 있어서 매우 무겁고 보기 싫은 데다 도둑이 침입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나는 또한 빈 옥상을 볼 때마다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공간에다 화초나 채소라도 심으면 좋지 않을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면 더 좋을 것이다. 요즘이라면 옥상에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정상의 옆집 지붕에는 마침 태양광 발전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검은색 패널은 그 집 옥상에 비스듬하게 서 있었고 주택 생김새나 색깔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전기세는 많이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옥상에서 혹시 바다가 보이나 둘러보았지만, 주위는 온통 캄캄하기만 해서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향숙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흐려서 그런지 하늘에 별은 많지 않았다. 성긴 별빛이 희미하게 반짝거릴 뿐이었다. 별빛이 아주 멀고 가냘프게 흔들려서 여름밤인데도 어딘가 서글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일출.

둘러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 일찍 자야 한다고 말할 때는 이미 오전 1시 무렵이었다.


나는 해뜨는 것을 보는 것에는 별로 관심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내 일생에 일출을 충분히 자주 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단체 여행이라서 허망한 바람일 뿐이었다. 내 말을 싹 무시한 채 친구들은 6시 정도에 '모두 함께' 나갈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각자 새 이부자리에 누웠다. 향숙과 희선은 침실에서 자기로 했기 때문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진태와 재관과 정상은 눕자마자 놀랍게도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낯선 곳에 갈 때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는 그날 밤 결국 눈을 감은 채 거의 꼬박 새우고 말았다. 약간 술을 마신 데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찾아오던 잠은 친구들이 코를 고는 소리와 함께 달아나고 말았다. 잠을 자야 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더욱 맑아지기만 했다.


그 밤에 일어날 수는 없었으므로 누워서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친구들이 쌕쌕 숨 쉬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쩌다 보니, 나는 뉴욕에서 서울로 왔다가, 이제 한국의 서남쪽 끝에 있는 섬까지 내려와서 어느 낯선 집 마루에 누워 있다. 그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들이 하나하나씩 느껴지고 되새겨졌다.


나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상의 집은 섬 안에서 비교적 바닷가인데도 불구하고, 내 귀에는 파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진도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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