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중부지방 여행 이야기
1.
충주는 충청북도 제2의 도시인데도 비교적 규모가 작다. 인구는 겨우 2024년 10월 현재 20만 7천 명에 불과하다. 20년째 이 숫자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래는 더 어둡다. 옆에 있는 제천과 함께 ‘소멸예방지역’으로 분류된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노인들만 남을까 우려된다. 충남에 비해 내륙지방으로만 구성된 충북은 발전이 더디기만 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충청도의 ‘충’ 자는 충주에서 왔다. 그런데 충주에서 내세울 만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은 거의 없으며, 심지어 관광산업도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산업 기반은 빈약하고 소비도시로서의 특징을 보이고 인구유출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나의 부모님의 고향이 충북이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수차례 갔었던 곳이라 아쉬움이 많다.
탄금대에서 나와서 단양으로 가기 전에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다.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우리의 첫 식사다. 아침에는 자동차 안에서 겨우 커피만 마셨을 뿐이다.
충주 중심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고층 건물도 거의 없는 시내를 달리다 보니 주차할 수 있는 식당을 찾기도 어려웠다. 조금 돌아다닌 후에 다행히 칼국수 집을 발견했다. 우리 네 명은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서 한가해진 식당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만두와 함께 그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를 시켰다.
이름 하여 ‘대야해물칼국수’
정말로 대야만 한 그릇에 각종 조개와 칼국수가 들어 있었다. 충주시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전에 공주 마곡사에 갔을 때는 그 앞에 큰 식당이 있어서, 먹음직스러운 산채정식과 더덕정식 등이 있었는데 충주에는 그런 것도 안 보인다.
산나물이나 더덕이라도 좀 갖다가 장사하면 안 될까요.
2.
해물칼국수를 먹고 나오려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친절한 단골 기사인 혁국이 혼자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차를 몰고 왔으며 우리는 식당 앞에서 차를 탔다. 드디어 우리는 충주를 떠나 단양으로 향했다. 하늘은 점점 흐리고 어두워져서 우리는 조금 조급해졌고 운전길과 발길은 더욱 급해졌다.
혁국이 계획한, 네 번째 탐방지는 단양에 있는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이것은 그냥 고대가 아니라, 아예 선사시대 유물이니까 고대문명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겠다. 하여간 오늘 갔던 아주 오래된 문명 탐방 4탄이었다.
선사유물이야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혹시라도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 가보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사이트에 설명된 자료를 소개하면 이렇다.
1983년 충주댐 수몰지구의 문화유적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마한시대까지 문화지층에서 여러 유물을 발굴했다. 수양개는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구석기시대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선조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들이 사용하던 유물을 경이로운 눈으로 발굴해 낸다. 그들의 인골, 그들이 사용한 각종 동물 뼈와 도구는 모두 우리의 관심사다.
우리가 고고학을 발전시킨 결과 우리는 그런 데서 학술적 가치를 얻고 있다. 2만 년 전에 도 이 땅에 사람들이 살았고, 그들도 우리처럼 먹고사느라 고생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의 사회가 우리 사회와는 아주 다를 것인데도 우리는 마치 그들이 우리처럼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일한 땅 위에서 구석기부터 초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라 불리는 동물들이 이어져 살았다는 것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경이로운 사건이다.
“선사시대가 다 그렇지 뭐. 기왕 왔으니까 빨리 둘러봐.”
“뭐 오래 볼 거 없으니까 휘 둘러보고 나오면 되지.”
“이런 데서도 입장료 받나?”
“뭐야, 2천 원이나 하잖아.”
자동차에서 내려서 입장권을 받으러 가면서, 전시관 사정은 생각도 않고 서로 주책없이 하는 말이다.
역사시대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물며 선사시대까지 신경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적을까.
‘선사’라는 말을 들을 때부터 별로 관심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인류의 역사를 숙고하는 차원에서 한 번 보고, 시간이 많다면 그 근처에 있는 수양개빛터널과 이끼터널도 보기를 권한다. 수양개빛터널은 볼 만도 할 것 같은데 오후 2시 이후에 들어갈 수 있고 입장료도 비싸다.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아무 시냇가에서나 조금 눈여겨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돌들을 전시해 놓고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각종 쓸모를 설명해 준다. 그 일반인들에 속하는 우리는 그 돌 도구들을 애써 찾아가 보면서도 아무 감흥이 없다.
그러니 차분하게 살펴보거나 쉬지도 않고 전시관 복도를 휘휘 지나 출구로 나선다. 전시관에게는 미안했지만 선사시대에 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려면 한도 끝도 없을 듯한 전시관을 둘러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우리는 바쁜 일정을 탓하면서 서둘러 자동차로 돌아갔다.
실제로 짧은 일정에 가야 할 곳은 많았으니까.
3.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나는 혁국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니? 고대유적 5탄?”
“아니야. 이번에는 구경시장.”
“국영시장? 국영으로 하는 시장도 있어?”
“아니. 시장 이름이 구경이라고.”
“시장이름이나 구경하라고?”
“아니, 시장 이름이 구경이라니까.”
“아니, 뒤에서 잘 안 들려서 물어보는데 웬 큰 소리.”
“야, 시장 이름이 구경이라니까.”
“...”
나는 물론 구경시장이라는 말을 즉시 알아들었지만 마치 ‘국영’으로 이해한 것처럼 실없는 아재 농담을 했다. 네 명이 차를 타고 가노라면 괜스레 이런저런 농담을 나눌 때가 많다. 피곤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아직 여행 첫날 낮이라 우리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 비해 자동차가 넓고 쾌적하고 신식이라는 것도 차를 타는 데에서 생기는 부담을 훨씬 덜어주었다.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서 구경시장으로 가는 첫 길목에 이끼터널이 있다. 연인들이 자주 걷는다는 도로로 유명하다. 이름에 터널이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터널이 아니다. 도로 양옆에 축대 같이 비스듬하게 벽이 서 있고 거기에 이끼가 잔뜩 끼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이끼터널의 길이는 230m.
벽에 자생하는 푸른 이끼를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문이 적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막대기로 이끼 위로 줄을 긋거나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랑의 하트 표시 양쪽에 이름을 적는 몰지각한 연인들.
이끼터널은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서 걸어서 가도 1분 거리다. 그래서 자동차를 전시관 주차장에 둔 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유명한 곳이다. 이끼터널 중간에 서서 인생샷을 찍는 사람들, 연인과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는 부모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갔던 날은 비가 오기 때문인지 이끼터널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까 이끼터널을 자동차로 주행할 때는 반드시 서행하기를 권한다. 길가에 보이는 이끼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는 재미도 크다.
4.
이끼터널을 지나서 시장구경인지 구경시장인지로 가는 길에, 만천하스카이워크 쪽으로 가면서 아주 예쁘게 꾸민 터널도 지나갈 수 있다.
이름하여 애곡터널.
혁국이 특별해 보이는 터널이 있다고 이미 말했지만, 나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나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밝은 도로에서 달리다가 갑자기 터널을 들어가거나 어두운 터널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는 갑작스러움을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터널이 주는 낯섦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중고등학생 시절, 기차를 타고 가다가 터널을 통과할 때면, 차량 안에 천장 불이 밝혀져 있는데도 아이들은 “어, 캄캄하다. 안 보이지?” 하면서 서로 등이나 팔을 때리기도 했다. 눈에 뻔히 보이지만 터널 안은 빛이 사라진 어두운 곳이라고 가정하면서 그렇게 놀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는 기차가 터널을 지나갈 때 정말로 캄캄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에 그런 놀이가 남았던 것이다. 모두 어렸을 적 기차를 탔던 때의 추억이다.
미국에 가서 살다 보니 거의 모두 넓은 평원이라 터널을 보기 힘들다. 뉴욕시에는 허드슨 강 밑을 다니는 터널만 있을 뿐이다. 수십 년간 터널 없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터널이 낯설어졌다. 한국은 산지가 많고 터널을 뚫는 기술이 발전해서 터널을 지나갈 때가 많은데 한국 여행이나 한국살이를 위해서 이런 것에 적응하는 것은 필수다.
애곡터널은 구조상 단선터널이라 한 방향으로만 차들이 달릴 수 있다. 신호등이 없고 사람이 수신호를 해서 지나다니고 있다. 물론 밤에는 터널을 지키는 사람이 없을 테니 신호등을 잘 보고 다녀야 한다. 터널 중간에서 다가오는 차를 만난다면 대단한 비극을 빚게 될 수 있다.
터널의 다른 입구에서 차들이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지나갔다.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반대쪽에서 기다리던 차들이 수신호에 따라 터널로 진입할 것이다. 터널이 좁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그 자체는 위험하기만 하지만, 사실 신기할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 터널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터널의 내부 장식 때문이다. 터널이 예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색색깔로 불을 밝혀놓았다. 이 장식을 말로 표현하기는 힘드니까 사진을 보고 이해하는 게 낫다. 터널 입구에 시속 20km라고 적혀 있으니까 부디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기 바란다.
애곡터널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더 길고 비슷한 단선도로 터널이 나온다.
이름하여 천주터널.
이 터널도 애곡터널과 마찬가지로 수신호에 의지하여 통과해야 한다. 터널 천장과 벽에 각종 색깔로 조명을 설치해 놓아서 약간 어지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터널은 애곡터널보다 훨씬 길어서 길이가 800미터나 된다.
자동차로 빨리 달리면 금세 통과하니까 역시 천천히 달리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삼봉로로 급회전하여 진입하기 전에 아주 짧은 상진터널도 있다. 삼봉로를 따라가면 곧바로 단양 시내로 들어가게 된다.
단양에 이렇게 여러 터널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물자 운송을 위해 철도를 놓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물자 운송 목적이니까 그렇게 단선터널이 만들어진 듯하다. 그 터널들을 지금은 이렇게 관광자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wY9xSM24U
고래야(Coreyah) -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