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호수에 대한 동경
1.
대학 동기 친구 상국이 책을 읽다가 뉴욕주에 있는 어느 평화로운 호수 마을이 나왔다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 호수에 대해 아느냐고. 상국이 말한 사라낙 호수(Saranac lake)는 나도 처음 들은 곳이라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사라낙 호수는 뉴욕주 업스테이트에 있으며,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300마일(4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인터넷에서 살펴보니까, 그 호수는 캐나다에 가까운 곳에 있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로 생각된다.
뉴욕시는 뉴욕주에서 가장 남단에 있는 도시다. 뉴욕시에서 뉴욕주 서북쪽에 있는 버펄로 시나 나이아가라 폭포로 나는 여러 번 여행했었지만, 그곳에서 사뭇 떨어져 있는 사라낙 호수는 알지도 못하며, 굳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뉴욕시에서 정북 방향으로 세 시간 정도 운전하고 올라가면 뉴욕주의 주도인 올바니에 도착하게 된다. 나이아가라 폭포로 갈 때는 그곳에서 거의 직각으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가야 한다. 그런데 사라낙 호수는 올바니에에서 북쪽으로 세 시간 정도 더 가야 할 듯해 보인다.
사라낙 호수의 동쪽에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대로 유명한 버몬트 주와 뉴햄프셔 주가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종종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중을 상대로 투표인단을 뽑는 ‘프라이머리’는 뉴햄프셔 주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다.)
뉴햄프셔 주에는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이트 마운틴이 있고 거대한 애디론댁 국립공원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두세 차례 그곳을 여행한 적이 있다. 뉴욕시에서 화이트마운틴까지 가려면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데, 아주 깊은 (애팔래치아) 산맥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요즘은 그렇게 오랫동안 자동차를 몰고 여행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렇게 긴 시간을 운전하면서 여행을 하기 위한 의지도 흥미도 육체적 에너지도 없다. 또한, 미국에서 오래 살고 여러 차례 장거리 운전 여행을 하다 보니, 미국 여행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다. 새로운 볼거리를 찾기도 어렵고, 새로운 것을 본다 해도 어릴 때처럼 감동스럽지도 않다.
미국은 아시아나 유럽처럼 역사가 길고 깊지 않다. 가는 곳마다 역사문화적으로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며, 인간적 스토리가 깃들어 있지도 않다. 아마도 미국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미국 백인들의 북미 개척 및 전쟁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장거리 운전 여행을 하면서 그나마 그런 것들을 조사하고 생각할 거리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장엄하고 멋지고 눈을 홀리는 자연환경은 많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 인간의 손길과 숨결이 섞인 곳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2.
그렇지만, 상국이 책을 읽으면서 뉴욕주의 어느 호숫가를 상상하는 것을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다. 그런 행위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책을 읽으면서 자주 했던 것인데, 상국은 아직도 그런 꿈과 상상력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순수하고 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행운 또는 특권이기도 할 것이다.
가보지 않았지만, 사라낙 호수는 매우 아름다울 것이다. 뉴욕에는 그런 호수가 무척 많다. 뉴욕 주 업스테이트(뉴욕시에서 한참 떨어진 북부 뉴욕 지역을 말함)는 산이 많고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주로 산악 지역이며 크고 작은 호수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유명 호수와 관광지도 무척 많아서 자연과 그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뉴욕주 업스테이트는 매우 가볼 만한 곳이며 은혜로운 곳이다. 사라낙 호수도 아마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북동부 지역은 세계적으로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단풍은 사계절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북반구 대륙의 동북부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다. 삼림이 풍부하고 계절의 온도차가 심한 곳이다. 그래서 가을 단풍은 미국의 동북부 지역과 캐나다 동남부 지역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대륙의 동북부에 있는 한국이나 일본의 가을 단풍도 아름답기 마련이다.
3.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이나 자연을 보기 위해 굳이 먼 나라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많지 않다. 그러나 작은 섬처럼 좁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또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현재에 이르러, 수많은 한국인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에 몰두하고 있지만, 그러한 장거리 여행이 인생에 어떤 행복과 경험을 안겨주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제 교역과 장거리 여행이 오늘날처럼 많아진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그런 장거리 교역과 해외여행들로 인해 지구 환경과 생태계가 빠르게 황폐해진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전지구적 경제발전과 교역 급증, 인구 증가와 잦은 해외여행과 막대한 소비로 인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로 과잉여행의 시대이다.
하여간 해외여행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여행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에서 쌓였던 피로를 덜고 신선한 활력을 얻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그것은 그냥 막대한 시간과 돈과 정력의 낭비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텍사스에 살면서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는 친구에게, 한국으로 여행을 함께 가자고 내가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 때문에 장시간 장거리 여행이 어려운 그 친구는 한국은 가보고 싶지만 다른 곳으로 굳이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요즘은 인터넷만 잘 살펴봐도, 우리가 직접 여행할 때마저 결코 보기 어려운, 수많은 해외 유명 관광지가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굳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여서 먼 곳까지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도 어느 정도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따라서, 지금은 아프리카나 남미나 유럽까지 애써서 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정말 심심하고, 돈과 여유와 에너지가 많다면, 조금 힘들고 귀찮기는 해도 그렇게 먼 곳까지 공들여 가볼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기도 어렵고,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웬만해서는 굳이 먼 곳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이 가는 곳과 정든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은 자주 가고 싶다. 나이가 든 후에 떠나는 여행은 젊었을 때 다니는 여행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것보다는,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흥미롭다.
그렇다 해도, 어렸을 때 ‘알프스의 소녀’를 읽으면서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와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동경하고, ‘별’을 읽으면서 알자스로렌 지역 어딘가의 빛나는 밤하늘을 동경하며,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사하라사막의 광대한 모래를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그립고 아련한 일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상국이 책을 읽다가 사라낙 호수가 나오는 장면을 읽고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말이나 얼굴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아직도 동심이 살아 있어서 그런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우리가 나이들어서도 간직할 만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이며 상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