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여행 이야기 16
1.
9월 초 어느 맑고 더운 날 아침 10시 안국역.
대학 친구인 향숙을 만나는 날이다. 숙소를 결정하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 때 나는 향숙에게 내가 서울로 여행 왔음을 알렸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오늘 만나기로 한 것이다. 향숙이 연락해서 미란과 상국까지 나오기로 했다. 모두 대학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다. 남자 둘 여자 둘이라서 혹시 이성적 설렘이 있을 가능성을 상상한다면 꿈 깨시라. 이 글은 그런 설렘을 전혀 담고 있지 않음을 미리 명확히 밝혀 둔다.
친구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만 오늘의 주인공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한 향숙은 평생 교사로 근무하다가 수년 전에 은퇴했다. 은퇴한 백조가 과로로 힘들다더니 그녀가 딱 그 짝인 듯하다. 매일 집안일을 하고 틈을 내어 교회 일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운동까지 하는데 그 와중에 엄청난 독서량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서울에 올 때마다 한두 번 만나고 내가 필요한 것을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기특한 인물이다.
늘 명랑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미란은 어떤 일상을 보내면서 살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팬데믹 전에 만났을 때 그녀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건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고, 요즘은 경제학을 공부하다고 한다. 나이 들어 소설 한 권 읽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고 머리 아픈 경제학을 공부한다 하니 나는 매우 놀랐다. 그것도 주류 경제학이 아니라 무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너희들은 대학 때 공부했겠지만 나는 지금 공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그녀가 당차 보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대학 시절 조금 공부했다는 것이 머리가 굳은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있겠는가.
공기업에서 평생 일하고 조기은퇴한 상국은 무척 말수가 적지만 마음과 생각이 깊어서 꽤 사색적인 인물이다. 사상은 강직하지만 성격은 순한 그는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고 음악을 좋아한다. 나의 친구들 가운데 고전음악을 즐기고 거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 중 한 명이다. 그도 향숙처럼 독서를 즐기면서 문학을 사랑하는 점잖은 인물이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향숙은 세부적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일단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고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우리와 만나서 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인 성품과는 거리가 멀다. 늘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지만 결코 무리함이 없이 대화와 논의를 중요시한다. 대학 때부터 성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그녀는 술을 잘 마시는 친구들과 만날 때도 아무 거리낌 없이 나와서 자신은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도 함께 어울린다. 그녀가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절제의 화신이라는 데 내 오른손 모가지와 전 재산을 걸진 않겠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 나이에 만나는 친구들은 주로 주식과 부동산이나 자식 또는 골프나 해외여행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정의를 사랑하는 나의 대학 친구들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약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생각할 때 그런 것들을 입에 쉽게 올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듯도 하다. 명품을 사고 과시하는 속물들과는 본능적으로 거리감을 느낀다. 부와 권력과 외모 등으로 타인을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억압하거나 괴롭히는 모기와 기생충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적대적 감정을 갖는다. 그런 친구들을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2.
눈이 부시도록 환하고 맑은 날, 파란 하늘에는 구름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 년 만인데 별로 변한 게 없네.”
안국역 바깥에서 만난 우리는 악수를 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미란은 재작년에 만난 이후인데도 정말 변함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향숙을 따라 먼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로 가자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과천, 덕수궁 세 곳에 분관을 두고 있다. 그들을 만나기 수일 전에 나는 정동에 갔다가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었다. 경복궁 옆 삼청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에 가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이다.
올여름과 가을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마침 화백 김창열과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김창열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지만 그의 작품에 관해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수십 년 전에 처음으로 미술관을 출입했던 때를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소위 '국전'을 보러 갔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국전은 주로 덕수궁에서 열렸다. 그때는 한국 미술계에서 추상화가 유행이었던 듯하다. 어린 나는 여러 회화 작품들에서 ‘무제’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나는 왜 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못 지을까 궁금했었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서 국전에 다녀온 후에 미술대학에 가려고 준비 중인 친구와 대화하다가 그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추상화와 ‘무제’라는 제목이 유행이기도 하지만, 추상화에서 작가가 제목을 붙이면 작품 해석이 제한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구체적이지 않은 단순함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추구하는 것이 추상화이고, 관객에게 느낌의 자유와 해석의 개방성을 최대한 넓히려는 의도로 '무제'라는 제목이 유행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추상 회화는 너무 단조롭게 보였다. 넓은 화폭에 지루한 그러데이션이 있거나 단조로운 단색이 칠해진 작품들이 많았던 듯하다. 때때로 거기에 붓으로 물방울을 떨어뜨리거나 흩뿌린 듯한 작품도 있었다. 그런 작품들 설명에는 으레 “원시적” 또는 “태고적” 등과 같은 비현실적인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서 직선들과 단색들로 그려진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았을 때,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고 말했던 호기로운 우리는 국전 작품들을 보았을 때도 “이런 그림은 눈 감고도 그리겠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오만방자했던 나는 사실 미술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겨우 서양미술사 같은 책을 본 게 전부일 것이다. 그런데 그날 모인 우리 가운데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친구들 역시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취미 삼아 그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회가 생기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꼬박꼬박 가려고 한다. 미술을 현대적 교양과 지성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을 감상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현대 지식인들이 문화예술에 관해 갖는 강박증에 속할지 모른다. 사용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대상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증세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미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감상마저 대도시 인텔리겐차 엘리트들에게 요구되는 여러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학습한 결과인 듯하다.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소비의 사회’에서 그런 정도의 사치는 교양으로 이해된다. 마치 대학에서 현대 지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교양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미술을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술은 하나의 브랜드이며 미술관을 가는 것은 욕망의 실현이다. 그것은 사용가치를 따르기보다 기호의 가치이자 타인과 구별되는 기호의 소비이다. 그런 소비를 등한시하면 대도시 엘리트층이 수행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결여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먹고사는 데 필수적인 항목들 외에 요구되는 다소 사치스러운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수준과 이해 능력은 종종 현대사회의 엘리트층이 자신의 서재에 갖춰 놓는 전집의 하나와도 같다. 그것이 소비를 소비하는 현대 대중소비사회의 현실이다. 욕망과 소비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으로서 갖는 이러한 결핍과 충족에 관한 생각은 객관적으로 증명할 문제가 아니다.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해도 욕망은 충족되지 않은 채 늘어나고 현대인은 또다시 결핍을 느끼게 된다.
하여간 점심 식사 후의 이야기지만 우리는 수성동계곡에 가기로 했고, 상국이 서촌 일대에서 미리 알아본 바 있는 추억의 LP 바에도 들르기로 했다. 그런 거 보면 상국은 참 고전적이기도 하지만 낭만적인 인물이다.
3.
우리는 안국역에서 출발하여 먼저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갔다.
도심 속에 있는 이 넓은 녹지광장은 경복궁과 종로 사이에 있다. 송현동 부지에는 일제강점기에 식산은행 사택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미군과 미 대사관 숙소가 있었다. 이 부지는 1997년이 되어서야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다. 이후 높은 벽에 둘러싸여 방치된 채 향후 용도에 관한 궁금증만 불러일으키다가 2022년에 부지 소유권이 한국주택공사로 또 이어서 서울시로 넘어갔고, 드디어 열린송현 녹지광장으로 탈바꿈하여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그곳에 서울시청 앞에 있는 서울광장보다 넓은 잔디광장이 있고 코스모스, 백일홍 같은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광장을 가로질러 가면 경복궁과 북촌, 광화문광장과 인사동 등으로 이어진다. 광장 주변에는 높은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말 그대로 대도심 속에 있는 쉼터와 같다.
우리는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지나 삼청로로 나갔다. 경복궁 건춘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로 그 맞은편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곳에 처음 와본 것인데 매우 세련된 곳으로 보였다. 하긴 가장 나중에 생긴 것이니까 그럴 것이다. 미술관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 책갈피를 준다길래 우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식을 받는 멤버십에도 가입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우리는 미술관에서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여러 전시장에 있는 그림들을 빠르게 살펴본 우리는 다음 행보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내가 미리 얻은 정보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과 덕수궁과 과천 세 곳을 모두 무료로 돌아볼 수 있는 투어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즉, 어디서 시작하든 관계없이 무료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으며 세 곳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인은 아침에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한 후 과천으로 갔으며 이어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까지 하루 동안 세 곳을 모두 돌아봤다면서 나에게 그 투어를 권했다.
나는 그 정보를 친구들에게 전했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과천으로 갔다가 오후에 덕수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를 듣고 향숙이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나는 미술관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과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물었다. 직원은 미술관 앞에서 과천행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면서 버스 출발 시간을 알려 주었다.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우리는 정말로 과천까지 갈 것인지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과연 온종일 과천과 덕수궁까지 다녀와야 하는가. 우리가 그럴 정도로 미술관 순회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가. 아니면, 그냥 주변에서 걸어 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미란은 추가로 과천 미술관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음식이 싸고 맛있다고 말했다.
나는 딱히 미술관 관람을 크게 즐기지는 않지만 이런 기회에 친구들과 함께 하루에 국립현대미술관 세 곳을 모두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과천까지 가는 것을 주저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과천행 투어를 포기했다. 그렇게까지 미술 관람에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