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여행 이야기 15
3.
종필의 농장은 어느 산 위에 있었다.
종필은 빗속에서 꼬불꼬불한 도로들을 지나서 좁은 골짜기 같은 곳으로 올라갔다. 산 중턱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으로 가던 중간에 나는 호원이 어떻게 이런 산까지 찾아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종필은 주소를 주었으니까 잘 찾아왔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호원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농장에 와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평생을 살았던 호원은 신문사에서 나온 후에 은퇴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공공기관에서 또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재작년에 들었다. 이후 그곳에서 여전히 일하나 했는데, 그는 올해 봄부터 잠시 일을 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연말부터 다시 일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학 때부터 늘 점잖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몸에 밴 듯한 그는 이미 훌륭한 역사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작년에 만났을 때 그는 새로운 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었다. 이번에는 따로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는 지금도 남모르게 집필을 지속하고 을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에서 내려서 우산을 쓰고 비탈을 조금 더 올라갔다. 언뜻 뒤를 돌아다보니 언덕 아래로 아파트 건물들이 보였다. 좁은 흙길로 조금 올라가는 동안 주변에 여러 작물을 심은 밭들이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앞에 움막 형태의 판자로 꾸며진 가건물이 나타났다. 한쪽 벽이 없는 움막이었지만 전등이 켜져 있어서 내부가 잘 보였다. 거기에 호원과 어떤 노인이 있었다. 선하게 생기고 사교성도 좋은 그 노인은 종필이 농장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분이라고 하는데 종필에게 농장 일에 관하여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그분은 테이블 위에 있는 가스 불판에서 처음 보는 우리를 대접한다면서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낯설고 이색적인 풍경에 갑자기 풍덩 빠져 들어가고 있다고 느끼면서 나는 종필이 권하는 대로 나무로 만든 식탁 한편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호원은 이미 그 안에 앉아서 노인과 대화하면서 부침개를 먹고 있었다. 모두 일 년 만에 만난 터라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처음 보는 노인이 계속 대화하면서 부침개를 부치고 우리는 앞에 앉아서 먹기만 해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붙임성 좋은 동주는 노인과도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벽도 없이 한쪽이 완전히 트인 움막이라서 약간 서늘한 밤 기운이 감돌았지만 부치개를 부치고 오골계를 삶아서 그런지 움막 안에는 따뜻한 공기가 흐르는 듯했다.
친절하고 착해 보이는 노인은 그 움막을 만들기 위해서 주차 장소부터 온갖 물건들을 산 위로 가지고 올라왔다고 한다. 그가 그곳에서 농사를 지은 지는 이미 십 년이나 됐는데, 그 세월 동안 그는 다양한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올라왔던 것이다. 다행히 전기까지 잘 들어오는 움막에는 일부 전자제품을 포함해서 다양한 식생활 도구들이 있었다. 아마 거기서 잠만 안 잘 뿐 온종일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 크고 무거운 식탁용 판자를 노인이 어떻게 산 위로 가지고 왔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종필은 자신이 경작하는 농장 넓이가 1500평이나 된다고 했다. 비가 오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척 넓게 느껴졌다.
“그럼 너도 농민으로 등록된 거지?”라고 내가 물었다. 언젠가 다른 친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지 넓이가 300평인지 500평인지 넘으면 농민으로 등록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했다. 농민으로 등록된다는 것의 의미와 혜택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려니 생각했다.
“나는 벌써 농민으로 등록했지.”라고 종필이 대답했다.
사실 피부가 검게 그을린 듯 보이는 그의 외모는 농민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혹시 밤에 야생동물은 안 나옵니까?” 동주가 노인에게 물었다.
“안 나오는 거 같은데, 나와 봐야 빛이 환하고 소리도 나서 괜찮습니다.”라고 노인이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대답했다.
노인은 오늘 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도 되는 듯 가스 불판 옆에 딱 붙어 앉아서 호박 부침개를 부쳤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친 호박 부침개는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종필이 움막 안 한쪽 구석에서 큰 냄비에 오골계를 삶고 있는 듯했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부침개를 신나게 먹었다. 처음에는 큰 양동이에 반죽이 거의 가득 찬 듯 보였는데 그 양동이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인은 부침개를 계속 부쳤고 우리는 어느새 호박 부침개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명랑하고 싹싹한 성격으로 보이는 종필의 아내는 우리가 그렇게 부침개만 먹다가는 백숙을 먹지 못하게 될 것 같다면서 종필을 탓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오골계를 먹게 하고픈 마음이었다. 그 바람에 종필은 앉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백숙을 끓였지만, 결국 백숙이 나올 때쯤 우리는 이미 상당히 배가 부른 상태였다. 우리는 올 때부터 배가 고팠었고 부침개는 매우 맛있었기 때문이다.
4.
종필이 드디어 검은 뼈를 가진 오골계 백숙을 큰 접시에 담아서 식탁에 올렸다.
그는 우리가 먹기 좋게 닭고기를 잘게 잘라서 각자에게 나눠 주었다. 아주 푹 끓여서 그런지 검은빛이 도는 닭고기가 매우 부드럽게 씹혔다.
오골계 백숙을 언제 먹어 보았던가. 모습이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과거 언젠가 그 음식을 먹었었다고 생각했지만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듯 종필은 능숙하게 닭의 뼈와 살을 발라내고 상 위에 늘어놓았다. 먹성 좋은 동주도 부침개를 많이 먹어서 닭고기를 별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
오골계 백숙 외에 종필은 찐 호박도 내놓았는데, 그것도 매우 맛있었다. 농장에서 종필이 가꾼 재료들이라 모두 신선했다. 종필은 또한 찐 밤들을 꺼내어서 상 위에 놓았고 손수 칼로 껍질을 깎아 주었다. 재작년에 지방 여행을 함께 갈 때도 종필은 날밤과 작은 칼을 가지고 와서 차 안에서 껍질을 까고 나눠 주었었다. 작은 칼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밤을 깎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더욱이 차 안에서 우리가 옆에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아내와 존댓말을 쓰면서 다정하게 대화했었다. 그 모든 것이 요즘 중년 남성들에게 좀처럼 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종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 주는 듯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새치가 좀 있을 뿐 군살도 없고 움직임이 매우 날렵한 인물이다. 어찌 보면 조금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는 종필이 어떻게 저리도 다정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졌나, 생각하면서 나는 속으로 놀랐었다.
그런 그의 성품은 농장에서 더욱 현실로 드러났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절대로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할 뿐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다.
식사를 하는 동안 바깥은 더욱 어두워지고 계속 비가 내렸다. 종필의 아내는 우리가 오골계 백숙을 먼저 먹지 않고 부침개로 배를 먼저 채웠다고 여러 차례 아쉬워했다. 나는 그녀가 종필과 마찬가지로 서울깍쟁이와 같은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며 착하고 순박한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애써 키운 오골계를 잡아서 백숙을 끓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많이 먹지 못해서 종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친절한 노인께서 부침개를 충분히 부쳐 준 덕에 우리는 배가 불렀으며 마음도 따뜻해했다.
우리가 오골계를 먹는 동안 종필은 별로 말도 없이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포함하여 뒷정리를 했다. 그 뒷모습을 보니까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참 부지런한 성품이다. 식당에서 먹었으면 이런 고생할 필요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종필이 너무 애를 쓰는 듯했다. 그래도 시골 출신 종필의 후한 인심으로 우리 마음은 따뜻하고 넉넉해진 듯했다.
내가 호박찜을 잘 먹는 것을 보고 종필의 아내는 호박찜과 밤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한사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종필과 아내는 기어이 찐 호박을 잔뜩 싸주었다. 여행 와서 혼자 먹을 것을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감사한 호의였다. 호박은 건강에 좋고 부드럽고 달콤했기 때문에 나는 한 봉지 받아 들었다. 받기는 했지만 내가 과연 잘 먹을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숙소에는 아무 재료도 없기 때문에 나는 매일 식당으로 가서 사 먹고 군것질을 별로 안 하는 편이다. (결국 나는 호박을 내내 냉장고에 넣어 두고 있다가 겨우 한 번 먹고 나서 미안하게도 버려야 했다.)
5.
농장에서 나온 우리는 그냥 헤어지기 섭섭한 나머지 당구장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판교역으로 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부근에서 당구장을 찾았다. 작년에도 우리 네 명은 식사 후에 당구를 쳤었다. 호원과 동주가 한 팀이 되고 종필과 개가 한 팀이 되었는데, 우리가 형편없이 지고 말았다. 나는 그에 대한 설욕전을 펼치겠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쳤는데 결국 우리가 또 패했다.
희한한 일이다. 당구계에 ‘입문’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도저히 공을 잘 칠 수 없다. 생각만 같아서는 충분히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치면 공은 영락없이 내 계획과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공이 조금만 멀리 있으면 두께를 잘 조정해서 맞히기도 어렵다. 힘이 달려서 큐대를 힘차게 뻗지도 못하고 공은 가다가 금세 선다. 공을 어떤 방식으로 쳐야 하는지 머릿속에서만 있을 뿐 실제로는 구현하지 못한다. 당구장에는 일 년 만에 돌아온 것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작년에 이어 또 이렇게 못 칠 수 있나, 하면서 크게 놀라고 만다. 나이가 들면 이런 것도 잘 안 되는가 싶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요즘엔 고전음악을 들어도 작곡가와 곡명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멜로디는 친숙하고, 예전에는 작곡가도 곡명도 금세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곡명이 빨리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고전음악뿐 아니라, 다른 것도 거의 다 비슷하다. 아, 그거, 하면서 머릿속에 금세 뭔가 짚히지만 정확하게 딱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답답하고 서글픔이 찾아든다.
그래도 바둑은 다를 것이라고 또 생각한다. 바둑은 몸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하는 거니까. 내가 취미 삼아 즐기던 잡기 가운데 바둑도 있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말부터 했으니까 나에겐 당구보다 역사가 유구하다. 2000년대 초에 인터넷 바둑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잊고 지냈던 바둑에 빠져들면서 컴퓨터 앞에서 바둑을 많이 뒀었다.
바둑의 단점이자 장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단점을 깨달은 듯 스스로 절제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아예 그만두게 됐다. 아니,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다시 둘 기회가 없었다. 수십 년간 누군가와 직접 마주 앉아서 바둑돌을 만지면서 둔 적도 거의 없지만 인터넷 바둑은 그때 이후로 안 하고 있다. 그러니, 당구에서 그런 것처럼, 이제 와서 막상 바둑을 두면 그것도 엉망으로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 속에서만 잘 둘 수 있을 것 같지, 실제로 두면 엉뚱한 곳에 착점 할 것이고 집 계산도 잘 안 될 것이며 전투 바둑을 해야 하는지 집 바둑을 해야 하는지 전략도 잘 서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도 인터넷 화면에서 가끔 프로 기사들이 두는 바둑을 본다.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 하는 중이다. 다른 운동 종목들도 그렇지만, 요즘은 나이 어린 기사들이 무척 잘 둔다. 나라가 발전하니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 그들은 대개 청년들이다. 역시 그런 것은 모두 젊을 때 잘하는 것인가 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렇게 잊는 것이 늘어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그것이 나이 들면서 저절로 생기는 현상이다. 패기 만만했던 젊었을 때와 같지 않다. 찌푸린 하늘이 무거운 밤, 그렇게 이미 기력이 쇠한 느낌이 든 우리는 다소 쓸쓸한 기분이 된 채 판교역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우스꽝스럽게도 내년에 친구들을 다시 볼 때는 기필코 당구에서 이겨야겠다는 허망한 다짐을 한다. 그때까지 모두 잘 지내기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