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사회의 비애

아무렇지도 않게 '계급도'를 말하는 속물사회의 풍속도

by memory 최호인

1.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놀라는 것 중에 명품 소비가 있다.

거리에서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수많은 여인들이 샤넬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이렇게 부자였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객관적 경제 지표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명품 소비에 집착하는 것일까.


요즘 한국사회에 '계급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계급도는 자산에 의한 계급 피라미드다.


이 계급도에 따르면, 재벌, 고위관료, 언론 카르텔을 ‘귀족’이라고 칭한다. 이어서 유동자산 30억 이상은 상류층, 자산합계 30억 이상은 중산층, 주택 한 채에 연봉 1억 이하는 서민, 월급쟁이와 무주택자는 하위층에 속한다. 알바, 비정규직, 일용직은 최하위 천민으로 구별된다.


자산과 소득에 따른 계급도와 달리 직업으로 구별되는 계급도도 있다.

의사, 판검사, 대기업 임원이 1등급,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이 2등급, 중소기업 직원과 자영업자는 3등급, 비정규직과 계약직은 4등급, 무직과 프리랜서는 5등급에 속한다.


지역 편차에 따라 발전된 거주지 계급도도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아파트 단지 건설과 함께 더욱 특이하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강남 3구 자가 아파트가 1등급, 서울 기타구 자가 2등급, 수도권 자가 3등급, 서울 전세와 월세 4등급, 그리고 지방, 반지하, 고시원에 살면 5등급에 속한다.


이렇게 피라미드를 그려놓고 나서 자조적으로 ‘조선시대보다 못한 신계급사회’라고 한국사회를 칭한다. 나는 이런 울림을 2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세계적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신 한국사회의 비극이자 대참사라고 생각한다.


2.

치료하기 어려운 고약한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 저속한 신계급의식은 보통 사람들은 예상하기 힘든 괴상한 내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자전거 계급도가 그 한 예다.

S-Works, Colnago처럼 200만 원 이상 가는 자전거가 1등급, Trek, Giant 상위처럼 100만 원 이상의 자전거가 2등급, 입문용 로드 MTB처럼 50만 원 이상이면 3등급, 20만 원 내외의 생활 자전거는 4등급, 편의점 앞 자전거와 따릉이는 5등급에 속한다.


한국인들의 소비재에 따른 계급의식은 원래 명품 접근도가 가장 유명하다. 가방이나 옷의 특정 브랜드를 ‘명품’이라고 정해놓고 과시욕으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끼리 경쟁 리그를 펼치고 있다. 이 품위 없고 저속하고 속물적인 명품 계급도는 어이없게도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흑사병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고급 가전, 수입차 등 고가 내구재 소유 여부도 꽤 구체적인 계급도를 만들었다. 하다못해 쇠고기 등 식품에서도 계급도가 그려졌다.


하다하다 별 이상한 데까지 세심하게 계급도를 만드는 쓸데없는 정성에 기가 찬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물질주의가 극도로 만연했다는 현대 중국인들에게도 이렇게 세부적인 종류의 계급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상류층은 벤츠, BMW 등 수입차와 고급 수입 가전, 명품 의류, 고급 주거 환경, 명품 패딩 등을 소비한다. 중산층은 제네시스와 같은 국산 프리미엄 자동차, 삼성과 LG 등 국산 가전, 브랜드 의류와 일부 수입 컨템퍼러리 브랜드를 소비한다. 일반 대중은 유니클로, 마르디 메크르디 같은 합리적 가격대의 국산 캐주얼 브랜드, K뷰티, K푸드 등 가성비와 트렌드를 동시에 추구한다.


그렇다면 전통시장을 기웃거리면서 저가 상품이나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혹시 천민이라고 불러야 하나.


3.

계급도란 특정 기준으로 사람들을 서열화한 도표이다. 군사 조직의 계급처럼 일반인을 계급화하려고 시도한 신풍속도이다. 처음에는 자산과 소득 정도로 계급을 나누더니 점차 그 저속하고 야비한 맛에 이끌려 지금은 아주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다. 심지어 유모차를 사는 데도,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데도 계급도를 그려놨다. 어린아이 데리고 다니고 밥 먹는 데도 계급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내밀하고 전통적인 계급적 분포는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 계급의식이 없는 사회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대학으로 서열화하고, 직업과 돈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상 소비재에서도 계급을 나누는 이 유난하고 특별한 현상은 대한민국이 아니고서는 결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 새로운 문화 풍속도를 나는 아주 해괴망측하고 불결한 현상으로 본다. 나아가 한국인들, 특히 청년 세대가 집단적으로 이 우매한 계급의식을 학습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더욱 발전시키는 비극적인 악순환은 더욱 천박하고 비극적이다.


4.

이런 현상이 생긴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산격차의 심화를 꼽을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자산격차는 극적으로 벌어졌다.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 브랜드와 아파트 넓이에 따라 부의 크기가 첨예하게 갈라졌다.


두 번째는 인터넷 발달에 따른 SNS와 과시소비문화가 문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일상화되더니 각자의 소비 수준이 적나라하게 비교되고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런 비교에 유달리 민감하고 과시욕구가 강하다.


세 번째, 자산격차가 벌어지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끝나고 말았다. 20여 년 전부터 ‘수저’ 론이 유행했던 것을 기억한다. 태생부터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나눠놓고, 수저 간 이동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게 되었다. 계층 이동 사다리는 극도로 허약해졌다. 사회경제적 건강도가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네 번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일부이지만, 한국인들은 조롱과 자조적 문화를 만들고 널리 퍼뜨리면서 스스로 신계급사회를 부추기고 있다. 돈과 소비재 등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계급도를 그려놓고 서로 조롱하면서 즐기는 이 저속하고 야비하고 야만적인 문화가 왜 하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나 슬프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계급도에서 낮은 서열에 속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수치심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어디로 갔을까. 높은 서열에 속한 사람들의 천민적 자부심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 멍청하고 한심한 계급도들을 외워가면서 서로 자조하고 조롱하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어찌하면 좋을까.


물론 이런 말을 할 때는 늘 조심스럽다. 모든 한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선진국들 가운데 이처럼 저속하고 야비한 사회문화는 일찍이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어서 하는 말이다.


한편에서는 하루가 짧다면서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일하고 계엄과 독재정치를 평화적으로 청산하는 한국인들이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명품 아니면 못 산다고 하고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해외여행을 안 가면 안 된다는 한국인들이 있다. 그런 양극적 현상을 보는 것은 정말 어지럽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치졸하고 가련한 비극이 조속히 청산되고 평등한 인간성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Gemini AI로 만든 계급도 풍자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