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남자, 가슴 큰 여자

외모지상주의와 집단적 모방의 비애

by memory 최호인

1.

난 무조건 키 큰 남자가 좋아. 클수록 좋지만 아무리 적어도 175 이상.

피부가 하얀 사람이 좋아.

어깨가 넓었으면 좋겠어.

머리 크기는 주먹만 하면 좋겠어.


요즘 한국의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이 데이트 또는 결혼을 하고 싶은 남자를 고를 때 거의 언제나 하는 말이다. 여성들이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까 결혼중매회사에서는 키가 크다는 사실에 높은 등급을 준다.


물론 남자들도 외모에 관하여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가슴이 크면 좋지. 적어도 C컵 이상. 밋밋한 가슴은 참을 수 없어.

엉덩이가 밋밋한 것도 못 봐주겠어.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긴 머리가 좋아.

피부가 하얬으면 좋겠어.

키도 170은 돼야지. 키 작은 여자와는 도저히 같이 못 다녀.

가슴은 커도 허리는 잘록해야지.


막상 적다 보니 외모에 관한 한 남자보다 여자에 적용되는 ‘기준’이 더 많아 보인다. 실제로, 알게 모르게, 남성이 여성의 외모에 관해 따지는 것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기준’은 사람 나름이다.


그런데도 이런 ‘기준’은 묘한 스탠더드가 되어서 한국인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졌다. 지상파 방송과 인터넷에서 이렇게 외모에 관해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이성의 최고 매력으로 외모의 한 요소를 이렇게 창피한지도 모르고 거리낌 없이 말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2.

사실 많은 한국 여성들은 일단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외모로 타인을 평가하면 자신이 뭔가 속물적이고 저속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여성에게 ‘조건’에 관해 조금만 더 깊이 물어보면, 사실 키는 이랬으면 좋겠고, 피부는 이러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요즘 여성은 압도적으로 남성의 ‘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노골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고, 소위 '예쁜 여자'를 찾는 편이다. 비록 어떤 요소, 예를 들면 가슴과 키를 거론하기는 하지만 남자들이 예쁨을 말할 때는 딱 하나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성도 남성이 “잘생겼다”는 말을 할 때 꼭 키로만 기준을 삼지 않는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유독 ‘키’를 가장 강조하는 것은 참으로 이채로운 일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키가 큰 남자는 ‘싱겁다’고 해서 약간 찬밥 신세였다. 그러니까 ‘키’에 대한 선호는 확실히 우성 유전자라기보다 시대적으로 유행하는 요소라고 이해된다. 그리하여, 요즘 여성들에게 ‘키’에 집착하는 일종의 ‘밈’이 퍼졌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EW.jpg

3.

미국사회는 한국에 비해 매우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서 산다.

나는 처음에 뉴욕에 왔을 때 거리와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고 매우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그것은 그들의 지적 수준이나 내면 어딘가를 보고 했던 생각이 아니다. 오로지 외모만 보고 느꼈던 것이다.


온갖 색의 피부, 크고 작은 키, 서로 다른 얼굴 모양과 냄새 등 ‘사람’은 무척 다른 모습을 가진 종자다. 고립된 섬과 같은 한국에서 줄곧 모두 비슷하게 보였던 사람들과과 어울려 살았을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거의 단일한 민족이 모여 사는 한국에서 온 나는 그 모든 것이 매우 신기해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것을. 그러면서 외모에 대한 평가나 언급은 저절로 상당히 사라졌다.


오늘날 미국인들 중에서 타인의 외모 선호 문제에 관해 한국인들처럼 노골적으로 묻거나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미국인들은 그런 질문 자체를 하지도 않는다. 키나 피부색 등 외모를 앞세워 말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특히 피해야 할 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런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고 서로 불편한 일로 간주된다.


따라서 외모에서 이상형을 묻는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 굳이 물어본다 해도, 키가 크고 날씬한 사람이 좋다는 식의 대답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 여성들처럼, 몰개성적으로 거침없이 ‘키’라고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대답하는 일은 결코 없다.


4.

언젠가 어느 언론사가 낸 사진에서 한 반에 있는 거의 모든 학생이 동일하게 검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창 롱패딩이 유행했던 때였다. 타인을 너무 쉽게 모방하고, 개성은 무시되며, 지나친 과시욕을 가진 모습을 나타내는 매우 놀랄만한 사진이었다.


그것은 그 옷을 입은 각 학생들에게는 각자의 선호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거의 모두 그렇게 옷을 입게 된 것, 집단적으로 같은 선호도를 따르게 된 것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것은 집단적 모방과 몰개성에 과몰입한 한국인들의 문화적 단면일 것이다.


외모에 관하여 한국인들이 갖는 관심과 모방은 매우 지나치고 너무 단조로운 편이다.

키, 나이, 자산, 소득, 직업, 학력, 지연, 혈연, 학연 등을 기준으로 한국인들이 나누고 가르고 편애하고 갈등하는 것도 매우 부정적 의미로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이고, 유난스럽고, 매우 모방적이고, 지나친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


소득과 직업, 사는 곳과 가정환경, 하다못해 유아용품과 자동차 등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를 그리면서 ‘계급도’를 그려내는 사람들은 무척 경이롭게 보일 정도다. 저렇게 서로 반목하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화합하기를 거부하는 ‘계급도’를 자연스럽게 전파하고, 서로 조롱하면서 자조하고 모방하는 민족이 한국인 외에 어디 있을까 싶다.


누군가 “난 가슴이 밋밋한 여자는 싫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들은 가슴 밋밋한 여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 “난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은 싫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들은 피부색 짙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 “난 돈 없는 사람은 싫어.”라고 말한다면, 가난하고 자산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서로 상처되고 마음을 긁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천박함이 사라지면 좋겠다.

개인의 선호가 있다고 해도 그런 것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 그 말을 듣게 되는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vsq3gpvsq3gpvsq3.png

(이 글에 실린 이미지는 구글 제미나이에서 생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