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무슨 말을 할까
무슨 글을 쓸까
차마 담을 수 없어
차마 읽을 수 없어
하고픈 말
써야 할 말
그저 하얗게
그저 단단하게
흰 기둥 백비에
한숨이
스며 스며
설움이
젖어 젖어
배어나오는
동백빛 눈물로
쓰여지는
동백빛 기억
白碑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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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 白碑라는 묘비가 있습니다
보통의 묘비와 다르게 비석에 아무것도 써넣지 않은 비석을 말합니다.
주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청백리의 묘나, 공을 많이 세워 그 치적을 다 써넣을 수 없을 때 그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백비가 있습니다
제주 4.3 평화 전시관에 있는 커다란 백비입니다.
긴 세월 동안 쓰이지 못한 이야기들,
오랜 세월 불리지 못한 이름들,
속으로 삼키며 말하지 못한 그 시절이
이름 지어지지 못한 채,
너른 백비로만 남아 있습니다.
인간들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와, 욕심과, 정쟁과, 무지와, 혼란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4.3입니다
하마터면 또 그 시절을 맞이했을지도,
하마터면 또 그 바람에 휘감겼을지도 모를
세월을 보내며 맞는 4.3이 새롭습니다.
백비에 어른거릴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하며,
마음속에 커다란 백비 하나 세워 봅니다
세상 모든 아픈 영혼들이 평화 속에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