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연덕스럽고 명쾌한 환상..영화 <싱스트리트>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원스>와 <비긴 어게인>에는 음악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현실의 고난 속에서 음악을 붙들고 살아가는 두 남녀가 나온다는 것이다. <원스>에서 외로움에 사무치던 남자(글렌 한사드)는 여자(마르게타 이글로바)에게 호감을 갖고 ‘밤을 함께 보내자.’고 말한다. <비긴 어게인>의 댄(마크 러팔로)와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도 이어폰을 나눠 끼고 뉴욕의 밤거리를 보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는 없으니 음악이나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제 남녀는 각자의 자리에 남아서 철저히 ‘나’를 위한 음악을 하고 그 결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취해 현실의 고통을 잊기보다 끝내 ‘동지’로 남아서 현실과 음악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두 영화는 ‘음악을 통해 환상을 꿈꾸라’고 말하는 대신 ‘현실의 거리 위에서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미약한 노랫소리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싱 스트리트>는 앞의 두 영화와 다르다.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공간에 흐르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들기 보다는 남자 주인공 ‘코너 로울러(페리다 월시 필로)’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환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코너는 경제 불황으로 신음하던 1980년대 아일랜드 사회에서 안팎으로 상처받는 존재다. 집에서는 이혼을 앞둔 부모가 툭하면 싸우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전학 간 가톨릭계 학교에서는 폭력적인 학칙과 친구들의 괴롭힘에 내던져진다.
코너가 현실의 고통을 잊는 방법은 다른 모든 사춘기 소년들과 같았다. 그는 환상 속으로 숨어든다. 코너는 거실에서 부모가 목청 높여 싸우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둔 방 안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형제들과 춤을 춘다. 이 대목에서 음악은 환상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거나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생각은 너무 버거워서, 행복한 환상 속에서 이 힘겨운 시간이 지나가 버리길 기다리는 사춘기 소년이 코너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싱스트리트> 스틸 컷 ⓒ 이수 C&E 페이스북
코너가 만든 밴드 ‘싱 스트리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인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밴드를 만든다. 그리고 라피나를 ‘뮤즈’ 삼아 노래를 만들어 그녀와 함께 뮤직 비디오를 찍는다. 라피나는 존 카니 감독이 기존 영화에서 보여준 여성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애초에 코너의 음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우상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욕망하되 이를 스스로 발현하지 못하고 끝내 ‘남자들’에게 의존한다.
결국 라피나는 영화 속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라피나에게 바치는 노래와 이를 연주하는 밴드 ‘싱 스트리트’는 코너가 현실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채택한 거대한 환상 속의 세상인 것이다.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질수록 코너의 세상은 폐쇄적이고 유아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사춘기 소년이고 고통을 직시할 자신이 없어서 방 안에서 홀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코너의 환상을 만들어 낸 노래들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코너가 노래를 부르거나 만들 때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의 환상을 충실히 반영했다. 코너는 ‘Drive it like you stole it’ 의 뮤직 비디오를 ‘미국 졸업 파티’ 장면으로 기획한다. 더 나은 세상인 영국, 미국을 향한 갈망을 키워가고 있던 그에게 미국 고등학생들의 졸업 파티는 그 무엇보다 즐겁고 사치스러운 환상이다. 그러나 ‘졸업 파티 세트’는 그들이 기획한 다른 뮤직비디오 현장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인 라피나가 나타나지 않는다.
초라한 강당 무대 위에 올라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지도 못하는 여남은 명의 엑스트라들을 바라보던 코너는 또 하나의 환상을 그린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Drive it like you stole it’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내내 코너를 괴롭히던 ‘벡스터 수사(돈 위체리)가 나타나서 코너에게 엄지를 치켜 올린다. 꿈을 잃고 상심에 빠진 코너의 형 ’브랜든‘ (잭 레이너)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나 코너의 연적을 때려눕히기도 한다.
코너의 환상은 ‘졸업파티의 여왕’처럼 차려입은 라피나가 뒤늦게 파티장의 문을 열고 등장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다. 사랑, 연적, 멘토, 굴복, 승리, 복수, 성공으로 가득한 사춘기 소년의 환상은 그러나 노래가사와는 달리 ‘훔친 듯’ 현실로 달려 나갈 수 없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끝내 뮤직비디오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라피나가 런던으로 가버리는 터다. 코너의 환상은라피나가 있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마침내 ‘싱스트리트’ 멤버들과 정식 무대에 섰을 즈음에는 가정의 불화와 코너의 고통이 절정에 달한다. 그는 자
신보다 앞서 현실에 치여 병들어버린 형 브랜든을 보면서 환상 속에 숨어 피해가기에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 엄혹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코너는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깨부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에서 환상과 현실의 변곡점을 마련한다.
이 무대의 대미를 장식한 ‘Brown shoes’는 엄격한 학칙과 폭력으로 코너를 괴롭혔던 벡스터 수사에 대한 헌정곡이다. 그는 벡스터 수사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나누어 씌운다. 코너는 벡스터 수사의 얼굴로 가득한 객석을 내려다보며 벡스터만이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린 교칙과 폭력적인 세상을 노래한다. 이 노래는 코너를 재단하고 옥죄려는 모든 현실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현실을 깨부수려는 코너에 발맞춰 라피나가 나타난다. 코너는 ‘Drive like you stole it’의 환상 속에서처럼뒤늦게 강당 문을 열고 나타난 라피나의 손을 잡고 가톨릭 학교의 강당을 뛰쳐나간다. 그리고는 그 길로 라피나와 함께 할아버지의 작은 배를 타고 영국으로 떠난다. 거친 파도와 비바람, 항로를 가로막는 거대한 배와 그 위에서 놀라 자신들을 바라보는 노인들을 지나치는 동안 두 사람의 표정은 불안해지고 말 수도 줄어든다.
스스로 만든 허위와 세상이 만든 허위를 모두 벗어던지고 ‘교회’를 벗어나 달리는 남녀. 마침내 떠나는 먼 길 위에서 막상 세파에 찌든 ‘어른’들의 얼굴을 대면하고 현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은 영화 <졸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유쾌한 환상에 사로잡힌 두 사람에게는 The sound of silence 보다는 ‘행복한 슬픔’이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곡은 ‘UP’이다. 궁지에 몰리듯 무대 위에 오른 코너는 관객들의 야유 속에서도 라피나를 위한 달콤한 노래 한 곡을 잊지 않는다. 그녀를 위한 노래이자, 자신의 절박함을 표현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I head to ride on a dream she's driving 나는 그녀가 몰고 있는 꿈 위에 올라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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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find a mixture of bounding perfection 완벽한 소설책을 찾았어.
You've gotta read but you don't wanna reach the end 끝을 보고 싶지는 않아
'Cause what if everything beautiful's fiction? 만약 모든 게 아름다운 소설이라면?
And this reality's just pretend? 이 현실도 다 거짓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