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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립체 Mar 15. 2020

톰, 이게 끝이 아니야.

뮤지컬 <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스포일러 포함)


혹시 이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눈 결정은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고 합니다. 결정마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대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보신 분들은 이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혹시 이 사실도 알고 계시나요? 눈 결정은 모두 육각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랙털 구조를 띄고 있어요. 프랙털 구조는 자연물에서 발견되는 구조로, 같은 패턴이 반복되며 전체를 구성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어떤 모양을 확대해 보았을 때, 작은 부분이 전체 모양과 동일 혹은 유사한 것이죠.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모든 대사와 이야기는 프랙털 구조처럼 반복되며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합니다.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파도를 움직이는 바람이 되고 세상을 흔드는 커다란 태풍이 되는 것처럼요.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그게 송덕문이란 거야."
"그럼 남아있는 사람이 써 주기, 약속."
"약속했으니까 그럼 나 가두 돼?"

"아는 걸 써, 톰."
"늦었잖아."
"이게 전부야."
"이게 끝이 아니야."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위버는 잠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 앨빈의 송덕문을 쓰고 있습니다. 송덕문이란 장례식에서 읽는 글입니다. 죽은 자를 기리는 글인 만큼, 고인과 각별했던 이가 쓸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송덕문을 써주기로 약속할 만큼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앨빈의 죽음에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앨빈의 송덕문을 써보려 하지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빈 종이뿐입니다. 그런 토마스의 앞에 앨빈이 나타납니다.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때처럼 해맑고 천진한 모습으로요. 그리고 앨빈이 선 그 자리에는 책과 종이가 빼곡히 들어찬 책장이 있습니다. 이곳은 토마스의 모든 기억이 보관된 장소입니다. 그리고 흩어져 내리는 종이처럼 토마스와 앨빈의 이야기가 그의 앞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초등학교 1학년, 학교를 더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 준 선생님의 이야기. 여섯 살 때 떠나보낸 엄마의 샤워 가운과 헤어롤을 하고 할로윈을 맞이하는 앨빈과, 영화 <멋진 인생> 속 수호천사 클로렌스의 모습을 한 토마스가 만납니다. 토마스가 만난 앨빈, 앨빈이 만난 토마스, 두 사람은 서로를 긍정함으로써 상대와 자신을 존재하게 합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스쳐 지나가지 않고 서로를 알아보고 오랫동안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대학을 간 톰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하다가 슬럼프에 빠지고, 그동안 점차 앨빈을 멀리하게 됩니다. 톰은 왜 슬럼프에 빠졌을까요? 승승장구하던 그의 발목을 잡은 생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던 중, 그는 앨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앨빈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송덕문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도저히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없어, 존 던이라는 17세기 유명한 시인의 시를 빌어 앨빈의 아버지 송덕문을 준비했습니다. 앨빈은 네 이야기를 쓰랬잖아, 톰. 부드럽게 그를 질책하며 그가 준비한 송덕문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직접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 서서 아버지를 기립니다. 
톰은 몰래 장례식장에 들어와 앨빈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절망합니다. 사실 톰은 알고 있습니다. 앨빈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습니다. 주변의 어떤 사소한 것도 앨빈의 앞에서는 특별하고 소중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앨빈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지극하게 사랑할 줄 압니다. 톰은 그런 앨빈을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명성을 만들어 준 그 책들 속 이야기는 사실 앨빈과 함께 하며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톰의 글쓰기를 막았던 근원 모를 열등감과 자책감, 그것은 톰에게 앨빈이 사실은 너무나도 큰 존재였기 때문에 느낀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톰에게 앨빈이 말합니다. 
"아는 걸 써, 톰. 전부 여기 있어."

톰이 앨빈을 부정하고 스스로 썼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사실 앨빈과 톰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톰은 은연중 느꼈던 앨빈에 대한 열등감과 재능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자신이 사실은 앨빈의 이야기를 도둑질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숨기려 했어요. 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채우며, 서로에게 각자 의미를 갖게 된 거예요. 앨빈이 해 준 이야기들은 톰의 머릿속에서 날갯짓하며 태풍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에도 들어있는 내 인생의 '이야기'란, 그래서 실은 앨빈의 이야기이자 토마스의 이야기이고,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입니다. 

톰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앨빈의 모습은 톰의 이야기가 됩니다. 앞으로도 톰이 보는 세상에는 문득문득 앨빈이 덧그려질 거예요. 눈이 내릴 때마다 톰은 앨빈이 강아지처럼 신나하던 모습을 추억할 겁니다. 바지 속에 눈이 들어갔다며 아이처럼 천진하게 눈밭을 구르던 앨빈의 모습을 그릴 거에요.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둘을 꼭 닮은 천사를 만들던 것을 기억하겠죠.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가던 나뭇가지가 폭포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던 시간과 처음 고향을 떠나기 전 나눈 포옹을 기억할 것입니다.

톰의 머릿속에서 그를 만나러 온 앨빈은 자신이 왜 죽었는지, 다리에서 뛰어내린 것이 맞는지, 왜 톰을 끌어안았는지, 마지막 순간 혹시 톰을 원망한 것은 아닌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건 톰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줍니다. 대신 앨빈은 춤추며 날갯짓하는 나비처럼 톰에게 삶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이제 앨빈을 보내고 혼자 남은 톰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삶의 힘을 담은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에 날갯짓하는 것입니다.

앨빈의 말처럼 톰은 이제 더욱더 있는 힘껏 아는 것, 자신에 대해 써야 합니다. 세상의 평판, 과거의 명망 있는 작가들, 거창한 작법과 기술을 의식하지 말고 말이죠. 그래서 이 극의 마지막 순간, 앨빈을 기리기 위해 단상에 선 톰은 노트를 덮고 앨빈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이 쓰였기에 1875년보다 특별한 1876년이 되었듯이, 이 극을 본 뒤 관객의 시간은 그만큼 더 특별해질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내리는 눈송이와 매해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를 마주칠 때 문득 톰과 앨빈을 떠올릴 겁니다. 눈송이 모양은 똑같은 것 없이 다 다르다고 했었지. 크리스마스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나 홀로 집에>가 아니라 <멋진 인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출처 : 내가 찍음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앨빈과 톰의 이야기처럼 작지만 강한 나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설레는 희망을 품게 된다면 이 이야기의 날갯짓은 제대로 먹혀 들어간 셈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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