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한마디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by 사계절



“나는 아이들 아주 어릴 때

너무 일만 한 것 같아.

아이들과의 추억이 없는 것 같아.”



“그래… 오빠가 일만 했지.

사람들이랑 회식이 먼저였고,

늦게 오고 그랬지…”



말을 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그래도 오빠,

아이들이랑 같이 보낸 시간도 많았어.”

슬쩍 위로를 덧붙였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안고 걷는,

젊지만 머리가 희끗한 남자를 보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나는 그 한마디가

참 반가웠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까.



남편은 아이들이 어릴 적

삶의 80, 90이

사회생활이었다고 말할 만큼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했다.

주변에서도

“형은 회사가 더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까.



대출 이자가 가득했던

신축 보금자리에서

구축 아파트로 옮긴 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완전한 안정은 아니었지만

그 안정감이 조금 채워지자

남편의 시야에도

‘따뜻함’과 ‘온기’ 같은 것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걸까.



지난 일주일 동안

퇴근한 남편과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했다.

닭볶음탕,

굴버섯 들깨탕,

데리야끼 닭살 덮밥….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

놓치지 말고 살아가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무엇을 채워줘야 하는지,

그런 고민들.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부모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부부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는 것.



늘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남편도 남편 나름의 힘듦이 있었을 텐데,

나는 애써 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내 것이 더 커 보였기에.’



그렇게

남편을 대하는 나의 태도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존중해 주고,

토닥여 주고,

밖에서는 잘 해내던 그 친절을

정작 내 남편에게는

건네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물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조금씩 나를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조금 더 친절한 언어로 말하기.



그래서 언젠가

내가 깨달은 것처럼

남편도 인생을 살아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게 되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더 커버리기 전에'



이제 마흔 중반이니

쉰은 넘기지 않기를.

시간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데

남편의 그 한마디는

변화의 씨앗 같았다.



아,

드디어

남편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는구나.

기뻤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며

남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으려고 하고,

저녁밥 한 끼를 차리고,

함께 먹는

소소한 일상의 반복이었을 뿐인데.



아마도

내가 육아휴직을 하며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기에

남편에게도

조금 덜 날카롭게

대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더 많이 소통하며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부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며

즐겁고 편안하게

깔깔거리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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