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전하고 싶은 본질
이 글은 이전에 내가 참여했던 북클럽에서 지나영 교수님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라는 책을 읽고 든 나의 생각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짐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다시 기억해 본다. 그리고 훗 날 내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들을 키웠는지 알고 그 마음을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전해 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내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다. 신생아 엄마부터 초중고 심지어 아이가 직장인인 엄마들도 있다. 우리 이야기의 90% 이상이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일어난 문제의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요즘 오은영박사님이나 육아에 관한 정보로 부모가 바뀌어야 아이도 바뀐다는 것을 많이들 알고 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머리로 아는 것이지 본인은 별로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도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솔직하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도 그런 것이 아이나 자신에 대해 장점을 말하면 자랑한다고 하고 단점을 이야기하면 들을 때는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도 나중엔 그것이 흉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이면 그냥 웃고 떠들거나 고민만 늘어놓다가 헤어진다.
나 역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시도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결국 힘들어도 근본적으로 아이가 아닌 엄마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꺼내 놓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냥 덮어둘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의 다른 이들과 같은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것은 너무나 내 마음을 꽉 채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 책을 읽고 나누는 중
"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까지! 3대가 되면 나타날 일들이 기대된다"
라는 리더의 말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벅찼던 마음이 컸는지 모임이 끝나자마자 엄청 피곤해졌다.
남편을 붙들고 열심히 말했더니 남편이 "당신은 읽은 책 보다 모임을 이끄는 리더와 멤버들의 나눔에 더 감동을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책 보다 더 깊은 것이 사람을 읽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결국 책도 사람이 쓴 거다. 모르는 누군가가 쓴 내용보다 내 가까이에서 진심을 나누는 이들의 가르침이 내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나눔이 책 보다 더 깊은 곳을 건드리고 나를 바꿀 때가 있다.
사실 나도 아이들 어렸을 때는 육아서를 잘 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짐을 얻는 것 같고 해야 할 일들이 더 생길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육아는 마라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세대에서 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마라톤이기에 뛰어들기 전에 먼저 내 마음과 몸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아이를 잘 이끌기 위해 나는 코치로 멘토로 양육자로 어떤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내 마음 상태는 어떤지 먼저 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준비가 안 됐으면 그것부터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앗! 내가 준비도 안 됐는데 이미 시작된 거야? 준비가 뭔지도 모르고 이미 달리고 있는 거야?
이미 힘들고 더 힘들어질 텐데 포기해야 하나? " 아니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포기가 어딨겠는가?
종종 어떤 사람은 이생망이라며 자식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된다. 엄마니까, 부모니까...
이미 시작된 경기, 달리면서 준비해 가는 거다. 일등이 목표면 당연히 안될 일이다.
하지만 꼭 일등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천천히 가도 괜찮다. 물론 힘은 더 들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아이를 보는 동시에 나의 내면 아이도 바라보면서 같이 다뤄줘야 한다.
무작정 달리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준비과정을 겪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다. 묻어 두었던 엄마에 대한 정서적인 결핍이 아이를 키우면서 나타날 때면 정말 말할 수 없이 괴로웠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
이제 어느 정도 그런 과정을 겪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지금 접하는 육아서는 더 이상 나에게 부담이 아니다.
그 안에 나와 맞지 않거나 내가 실천하기 힘든 것을 가릴 줄 아는 마음도 생겼고 나를 점검하면서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도 찾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면 좋을지 길도 안내받는다.
얼마 전 손흥민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서 기본기에 대해 생각했다. 월드스타 손흥민도 기본기를 오랜 시간 익혔다고 한다. 운동에 있어 기본기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건 운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무리 준비해도 경기장에서는 수많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육아도 마친 가지라 생각한다. 아이마다 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 다르고 심지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다 다르다고 하지만 본질이 중요하다. 기본이 중요하다.
본질과 기본을 완전히 파악하고 알고 있지 않으면 다가오는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많은 엄마들을 만나 상담하고 이야기하지만 이걸 알고 인정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인정한다 해도 바뀌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혼자 낑낑 대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본질을 아는 것과 실천은 달랐다.
육아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 때 가끔 내 안에 깊은 두려움이 생기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그럼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말하는 대로 잘하고 계세요? 그래서 당신 아이는 잘 컸어요?" 하는 말이다.
늘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기에 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누르고 나에게 가면을 씌울 때도 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나는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날을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너무 부족해서였다. 맞벌이하는 부모 밑에서 온전한 인성교육과 정서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순간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많이도 고민했고 울었고 기도했고 배워갔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또한 내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결혼 전 나의 교사로서의 경험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과정은 무시된 채 '그래서 지금 아이들은 얼마나 똑똑하고 잘하냐'라고 평가받는 다면 무척 슬플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수학 선생님이라고 아이가 수학을 잘하고 영어 선생이라고 아이가 다 영어를 잘하지 않는다.
부모가 음악가라고 아이가 음악가일 필요가 없다. 부모가 정신상담 의사라고 내 아이 정신에 문제가 없으란 법은 없는 거다.
본질이 중요한 것이다!
설령 내가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도 본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기가 아닌가!
내가 실천하지 못한다고 본질을 말하지 않고 감출 것인가!
내가 실천하지 못해도 진정한 본질을 내 아이에게 알려줘야 아이가 좀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언젠가 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에게 본질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받지 못했다고 아이에게 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배워서 주면 된다.
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까지 계속해서 전하고 싶고 가르치고 싶은 본질!
그것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전하고 싶은 본질은 무엇인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주로 소비되는 육아 강의나 서적은 '어떻게 아이를 똑똑하고 공부 잘하게 키울까?
어떻게 해야 내 아이를 명문대에 보낼까?'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인데, 나는 그 반대의 것을 말하려고 한다고, 그런 것이 부모 역할이 아니라고, 육아의 본질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를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의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전하고 싶은 그 본질은
너는 너 자체로 너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아이들이 태어난 신생아 때부터 아이와의 갈등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이 아이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너무나 행복하고 따뜻하게 수용받고 자란 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다. 때론 묻어두고 괜찮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부분까지 건드려질 때면 힘들다 못해 괴롭고 고통스러워 기도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육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배워 왔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아이들 자체가 가치 있고 소중하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자랐고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고 남들보다 앞서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치 속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심긴 이런 가치들이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혀서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기에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 용기를 낸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서 깨달아도 어릴 적 마음에 박힌 생각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 갈수록 아이들은 성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좀 더 잘해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아이들의 좋은 성적으로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없지 않아 있다. ‘그럼, 그렇지, 너희는 잘하고 있어! 그만큼 나도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이런 나의 욕심을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은 거 같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들의 노력을 그저 칭찬해 준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물론 그런 마음이 크지만 더 솔직히 더 깊이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향한 욕심과 기대가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이 올라올 때면 나 스스로 통제하고 다스릴 뿐이다.
다행히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고 미국 안에서도 교육열이 아주 과다한 곳은 아니다.
우리 지역 안에서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공부보다는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지향하는 곳이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때문에 나도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칭찬할 수 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더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하는 중고등학생이 되면 나의 욕심이 밖으로 나와 더 이상 숨기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욕심을 감출 것이 아니라 싹을 자르려고 한다.
오래전부터 싹을 자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지만 쉽게 자를 수가 없다. 잘랐다고 생각해도 어느새 그것이 더 단단해지고 굵어져서 올라오는 것을 가만히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너무나 실망스럽고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맛보지 않은 것을 아이에게 먹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아기 때 먹는 것과 3살에 먹는 것과 초등학교 때 먹는 것이 다르다.
나는 어릴 때 이런 것들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지금까지 잘 먹고 컸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청소년기에 맞춰 또 그들이 먹어야 할 것이 있지만 나는 내가 먹던 것을 아이들에게 줄 생각이 없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주어야 하는데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새도를 위해 나는 또 배워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어떨 땐 쉽게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 이렇게 하면 잘 클 거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결과들을 보면서 흔들릴 때가 있다.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가이드이다. 멘토이고 격려자이다.
먼저 그 길을 가본 선배이며 함께 같은 마음을 품고 가는 동료이다.
때문에 나는 내 아이가 결혼해 자신의 자녀를 키울 때 나와 비슷한 고민이 생긴다면 내가 그리고 내가 쓴 글들이 아이에게 멘토가 되고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다른 아이들이 아닌 내 아이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진정으로 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아이가 가면을 쓰지 않고 자기 다울 수 있는 아이로클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에게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깊이 경험하지 못한 길로 아이들을 이끌고 가려면 그리고 이것이 나를 넘어 내 손주들에게도 전해지려면 더욱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와 우리 아이들이 가려는 길이
행여나 다른 이들이 가는 길과 다르면 어떠랴.
뜻을 정한 곳에 길이 있을 것이다.
좁은 길이면 어떠하랴.
좁아도 누군가가 갔으면 나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길이면 어떠하랴
힘들고 불평하며 가는 게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가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닌가!
길이 없으면 어떠하랴.
내가 밟으면 그때부터 그곳은 길이 될 것이다.
다수의 많은 사람들 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들이 소수일지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겐 더 필요하고 힘이 될 것이다.
이 소중한 본질을 후대까지 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남편과
나의 아이들과 함게 오늘이라는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