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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피로는 어디에서 오나요?

by 네번째달 읽고쓰다

어렸을 때,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역시 KBS2 <개그콘서트>였다. 마지막 코너가 끝나고 연주팀의 연주가 나올 때면 "자, 이제 방에 가서 내일 학교갈 준비해!"라는 엄마의 외침으로 TV는 꺼졌고, 방에서 사부작사부작 가방을 좀 챙기다가 딴짓을 하고는 침대에 눕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즘은 일요일이 조금 바뀌었는데, 일요일 저녁 10시 반에 유투브로 KBS1의 <저널리즘 토크쇼 J>를 보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SBS로 채널을 돌려 <SBS 스페셜>을 보곤 한다. 물론 맥주 한 캔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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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된 SBS 스페셜은 유독 흥미로운 제목으로 나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 라는 제목은 90년대 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 40대 팀장님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일명 30대 젊은 사원들과 50대 임원들 가운데에서 일명 '끼이고 치이는' 40대 팀장님의 애환을 보여주었다. 뺀질거리는 젊은 사원들은 최대한 일을 적게 맡으려고 도망치고, 50대 임원들은 '상명하복!'을 외치면서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니, 이 둘 사이에서 40대 팀장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준 한편의 시트콤같은 그런 다큐멘터리였다.


방송에서 특히 50대 임원들과 20, 30대 직원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가구회사의 카탈로그 촬영을 두고, 50대 임원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 '회사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직원이 촬영이 할 것'을 요구했지만, 젊은 사원들은 '항상 반복된 촬영 방식과 구도가 지루하다'는 의견과 함께 그 누구도 그 일, 즉 촬영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라'는 팀장의 말이 먹힐리도 만무했다. 20, 30대 직원들은 자신이 현재 맡고 있는 일도 버겁기에 더 이상의 새로운 일을 맡아서 본인의 업무 사이클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그 사이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건 40대 팀장님이라는 뭐,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부모님 세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젊은 사원들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네, 제가 나서서 촬영을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면 정말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이었을까?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 촬영이라는 특수한 기술은 누구나 쉽게 시작은 할 수 있어도 전문적인 촬영 및 보정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기술이다. 50대 임원의 말처럼 스튜디오에서 좋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른다고 해도, 광고 속 사진처럼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좋은 사진을 얻어내는 건 기적을 바라는 일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런 기술이 있다면 그건 더 큰 시련인데, 이번에 잘 찍어서 여차저차 잘 넘긴다고해도 다음번 촬영도 당연히 나의 몫이 될 것이고 아마 다른 부서의 일까지 몽땅 나의 차지가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급여가 더 많아지질까? 글쎄다.


50대 임원의 말처럼 과거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현대중공업의 정주영 회장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 사진을 한 장을 보여주면서 선박을 수주하고 영국에서 차관을 빌려 조선소 건립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했다는 일화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태풍이 불어 조선소의 구조물 하나가 흔들리자 태풍 속을 혼자 걸어나가 와이어로프로 고정시키려고 했다는 에피소드는 마치 요즘의 캡틴 아메리카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다. 이처럼 없는 것도 만들고, 있는 것은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슬로건은 군대 문화와 뒤섞이면서 더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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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독일에서 <피로사회>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독일에서 발매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서 과거의 사회가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규율사회' 또는 '통제사회'였다면 지금은 '성과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유교라는 지독한 뿌리에 매몰되어 통제사회와 성과사회가 섞인 사회로 지난 70년대부터 2010년초까지 끊임없이 달려왔다. 그로인해 엄청난 속도의 경제적 발전과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IMF를 단 5년만에 종료시킨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그것은 한트케가 <피로에 대한 시론>에서
"분열적인 피로"라고 부른 바 있는 바로 그 피로다.

- 한병철 저 <피로사회 > 58p




책 <피로사회>가 2012년에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을 때, 당시 국내 출판자들은 이 책을 대통령 당선자에게 주고 싶은 책으로 꼽혔을 만큼, 한국에서도 이 책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슬프게도 '최초의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이름표와 '512'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된 그 대통령이 아마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음이 최근에서야 밝혀졌지만. 어쨌든 규율사회의 바탕에 성과사회의 토대가 더해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자본은 마치 우리 개인에게 관대한 자유를 부여하고 있지만, 실상 자본이라고 불리는 돈 그리고 회사는 우리에게 매우 확고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 선까지 영어점수를 얻지 못하면 너를 뽑아줄 수 없어' 라든가 '이번 분기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내년에 승진할 수 없어'와 같은 아주 뚜렷한 외부의 목표들이 우리를 잠식해왔고 그 속에서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사회 기조가 생성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되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특히 2010년 초는 '성공과 성과로 평가받는 사회'의 정점이었고, 모두들 자기계발에 목을 매느라 20대 청춘부터 50대 퇴직세대들은 각종 강연을 쫓아다니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필연적이게도 '번아웃'이라는 단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서 정신과 육체의 탈진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책이 발간된지 9년이 지난 현재, 나는 지금의 2019년 한국 사회는 조금은 달라져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을 퇴사를 하는 직장인들은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거리가 아니다. 대기업이 주는 안락한 경제적 풍요로움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이들이 이야기는 이제 우리 주위에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고, 명문대를 나와서 7급이 아닌 9급 공무원을 선택하거나, 전문직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소박한 가게를 차린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에 이런일이>에 소개되지 않는다. 소유를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스트'가 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되었고,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사람들은 일보다 혹은 그 이상으로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생기고 있다. 즉, 누군가가 정해준 성과의 달성과 경제적인 풍요보다 나 자신의 행복을 삶의 중심에 두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피로사회>가 설명하는 '성과사회'는 다시 그 변곡점을 넘어 새로운 '개인행복사회'로 점차 그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의 피로는 어디에서 오는가? 만약 높은 이번달의 판매실적이나 과도한 업무로 인해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가끔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당당하게 거부를 해보면 어떨까? 물론 사표는 가슴에 늘 품어두어야겠지만 말이다.

p.s. 철학책을 우습게 봤다가, 아니지 철학책을 그냥 봤지만 역시나 무슨 말인지 도저히,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조금씩 철학책에 적힌 그들의 이름과 심오한 문장이 언젠가 나에게도 편하게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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