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홍콩의 교육 시스템은 늘 '빠르다.'
대략 두 돌쯤 되면 요이땅~ 달리기 경주가 시작되는데,
만 2세,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인터뷰를 봐야 하고 만 3세 겨우 유치원생이 되면 만 4세-만 5세 사이, 초등학교 입학 원서를 내야 하고 만 5세에서 6세무렵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스템이다.
만 4.5세의 우리 아이도 요즘 초등학교 입학 원서를 내고 있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고 유치원 1-2학년 성적표, 유치원 원장 선생님의 추천서까지 필요하다. 후덜덜... 우리는 이걸 수능보다 어려운 초등학교 입시라고 부르기로 했다.
로컬과 인터내셔널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우리 아이는 홍콩 아이들처럼 바쁘게 학업 전선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인터내셔널 아이들보다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거기에 외국인 엄마인 나는 홍콩의 교육 시스템을 거의 모르고 있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1년 전에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옆집 엄마(홍콩 사람)가 발 벗고 나서 입시 컨설팅(?)을 해 줘서 좋은 학교가 어디인지, 이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뭘 준비해야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덕분에 어찌어찌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보고 있다.
11월생인 우리 아이는(개월 수를 핑계 삼아 봅니다) 뭐든지 좀 느린 편에 속하는 아이다. 걸음마도 14개월이 지나서 겨우 했고 특히 운동 신경이 또래 친구들보다 느려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같은 11월 생인 친구가 1부터 20까지를 차례대로 야무지게 세면서 놀고 있을 때, '1,2,3,7,11, 20' 창의적인 방법으로 건너뛰기하며 숫자를 세고 있는 어린이... 겁이 어찌나 많은지 놀이터의 높은 곳을 오를 때는 아직도 엄마 손이 필요한 그런 어린이다. 장점을 보자면 신중하고 창의적일 수 있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인 나는 아이를 바라보면 마음에 고구마가 얹힌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든다.
이런 아이를 이 빠르게 돌아가는 경쟁 사회(?)에 벌써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참 마음이 어려운 요즘이다. 우리는 아이가 조금 천천히 자기의 속도에 맞춰서 세상을 알아갔으면 좋겠는데, 매달 유치원에서는 아이의 평가표(?)를 보내오고, "어머니, 율이가 수학이 좀 느려요. 덧셈의 개념을 인지 못하는 것 같아요" 등의 코멘트를 들을 때면 가슴에 고구마가 하나 더 얹히는 느낌이 든다.
육아는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세상은 우리 아이를 기다려 주지 않는 것 같다.
"1 더하기 1은 뭐야?"라고 물어보면 해맑게 "세븐"이라고 답하는 아이를 보며, 수능보다 어렵다는 이 초등학교 입시를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심히 염려가 된다. 더불어 이 와중에 1과 1을 가로 세로로 연결하면 7이 된다고 좋아하는 도치 파파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율이는 율이 답게'가 우리의 육아 모토였는데,
나는 어느새 세상 바람에 한없이 흔들리는 갈대가 되어 버렸다.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아이가 어려워하던 것을 느리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 해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엄마, 여기 보세요~ 나 여기 올라왔어요." 그렇게 무서워하던 정글짐 꼭대기에 혼자
올라가서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느리지만 자기의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에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다른 아이가 내 아이보다 얼마나 빠르든지 비교하지 않고, "율이는 율이 답게"를 끝까지 지켜내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우리 아이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도, 부모인 우리가 옆에서 끝까지 아이를 기다려 주면 그만인 거 아닌가? 언제나 널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 하나면 아이는 결국 어떤 어려움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입시(?) 결과는 오직 그분만이 아시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넌 최고야,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엄마로 남고 싶다. 그게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지키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