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혼자 지껄이는 말이나,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일기를 써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독백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나만의 비밀을 누설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라고 외치는 나의 아픔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목발에 의지하여 걷는 나는 우산을 쓸 수 없지 않은가 24p
편의점에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확인한 건 금요일 저녁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알 수 없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러서 우산을 가지고 갈까? 망설이다 두툼한 겨울 점퍼의 모자를 눌러쓰고 마치 [다빈치 코드]에서 나올법한 중대한 의식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책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른의 시각으로 주변을 의식하는 나의 쓰레기 같은 감정을 걷어내자 하율이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78p
사람에게는 '이렇다'고 정의하는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기준을 마치 표준화시켜 그렇지 않은 것은 '나쁘다, 안된다'등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자리하고 있죠. 그것을 떼어내고 사람을 마주하기란 마음의 수련이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글에서 잠시 멈추어 있었습니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끔 부추기기도 한다는 것은 사춘기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일탈을 꿈꾸었던 나의 내면의 아이가 되살아 났습니다. 억압된 가정환경에서 "싫다,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 뱉어내지 못하고 살았던, 엄마가 때리는 모진 매를 견뎌내면서도 마흔이 되기까지 ’yes'만 뱉어내던 나를 마주하자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작가님의 의도를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1
블로그 이웃으로 알게 된 우리.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읽고 언니가 손글씨로 써준 아날로그식 서평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언니를 만나러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아주 많은 책 속에 파묻혀 맛있는 빵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할게. 하나는 노노를 우리 집주소로 옮기고 학교를 전학시켜서 내가 데리고 있는 것, 또 하나는 금요일 밤에 와서 일요일 예배를 보고 집으로 가는 방법이야.” 노노에게서 엄마를 떨어져서 지내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고, 나는 공부가 하기 싫기에 두 가지 모두 다 ‘싫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2
너 노노랑 여행다운 여행 안 가봤지? 언니가 이번에 다녀온 ‘시점’이라는 곳이 너무 좋더라. 언니가 예약해 놨으니까 다녀와. 운전에 자신 없다는 나의 말에 언니는 퇴근시간에 맞춰 집 앞으로 와주었고 강화도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까만 밤하늘의 별이 무수히 수놓은 것을 올려다 볼 틈도 없이 언니는 커피 한잔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노노와 둘의 여행을 위해 인천에서 P시, P시에서 강화도, 강화도에서 인천으로 다시 가기가 쉽지 않음에도 언니는 그렇게 나에게 ‘온수리’라는 브런치 작가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3
상담카페 [여기 그대로]를 향해 전철을 탔습니다. 일본식 2층 집을 개조한 집에 마주 앉아 설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오래 그렇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뒤로하고 왔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이 책에서 나온 언니의 글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쉰셋의 나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지금과 다른 상황을 만들어가기가 쉽지 않음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자로서의 길에 도전하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부모들의 내면의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엄마는 몰라도 선생님은 아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함으로써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지
경험담을 통해 콕콕 가슴을 찌르고 있습니다.
상처가 많은 부모를 만나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이 집 저 집 아이를 맡기며 출근을 하고, 방학이라 잠든 모습을 보고 일터로 향해야 하는 내 마음을 마주하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요즈음 노노의 일상을 보면 게임은 그리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친구들이 공부를 하느라 함께 게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한 가지 길이 막히자 노노는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흡수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에 자리한 것을 기억하는지 굴속 같은 작은방을 우주로 만들어 꼭꼭 숨어 지냅니다.
책에서 두 번이나 인용된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그렇게 내 아이는 가지 않는 길을 택해서 지내고 있지만 나의 상처가 아이에게 미러링이 되었고, 아이의 상처까지 더해진 지금 내가 바꾸려 한다고 해서 바뀔 아이가 아니기에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말은 작가가 우리에게, 우리가 아이에게, 내가 나에게 전해주는 가장 쉬우면서도 하기 힘든 말과 마음가짐입니다.
실천을 하러 아이에게 발걸음을 옮겨보려 합니다. 송 하이의 니소식을 들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