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탈출 비켜!!!

꽉 막힌 관계에 대한 고찰

by 솔담

어제는 모든 것을 내주어도 좋을 관계가 오늘은 차라리 모르는 남이었으면 좋았을 관계가 되고 마치 쉼표처럼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리는 인간관계.

나의 박자에 맞춰 가면 좋으련만 지휘자는 자신만의 박자와 해석에 맞춰 사람들을 이끌어 간다. 마치 산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처럼. 여기까지 와야만 폼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서있는 그 바위는 구시대의 포토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울긋불긋 옷 색상을 돋보이도록 무채색을 띠고 있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오래 묵을수록 맛이 나는 된장처럼 우리네 정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농익어 가는 줄 알았다. 발효되는 감정이란 어떤 걸까? 그냥 주어지는 줄 알았다. 내 기준으로 나는 아무 문제없었다. 너무 잘난 줄 안거다.


설마? 나와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평등했던 너와 나의 사이에 주종관계가 성립하고 부리는 자와 부려지는 자로 나뉘더니 이제 내 위치는 복종만 하면 되는 그런 밑바닥에서 철퍼덕거리고 있다. 밑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처럼 땀 흘리며 올라오는 나를 바라보는 너는 돈이라는 운송수단을 동반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샘물 한 모금을 나눠주고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에 미숙했던 나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을 줄도 모르는 원시적인 존재다.


'돈'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이 필요한 삶이기에 무던히도 애써보지만 나의 발언은 삼가야 하고 복종으로 물들여져 한다. 마치 살아 남기 위해 잎을 떨구고 색이 변해야하는 나무처럼.


그래.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을 모두 떨구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뭇가지다.

너는 푸르른 초록잎(만 원권)과 황금 잎(오만 원권)으로 치장을 하고 태풍에 뿌려대는 나뭇잎을 주워 담으려 하지 않는 그런 관계의 우위에 있다.


속된 말로 차포 다 데고 한번 붙어보자. 돈이라는 너의 포장과 직책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하나의 씨앗에 불과 지 않던가. 자연의 힘을 빌어 꽁꽁 언 땅이 녹도록 기다리는 기회를 엿보는 원초적인 자였음을.


난 오늘도 대나무 숲을 향하여 외친다!


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소리치며 싸버린 나의 배설물을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걸 아는지.

나는 나뭇가지 끝에 움츠리고 비상할 날을 기다리며 싹이 터질 수 있는 희망을 놓지 않으련다. 아름드리나무의 형상을 한 너와 나의 관계는 순환되고 있다.


같은 관계에 있던 A와 B가 한 사람이 생산물과 생산수단을 소유 함으로써 갑과 을의 관계가 되었다는 원시 공산사회에서 고대 노예제도로 넘어가는 글을 읽으며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늘 갑과 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