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만큼 꾸는 꿈

자식이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은 꿈일까요?

by 솔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며 4개월 정도 집에 있게 된 중3 아들.

자율학습에 익숙지 않은 아이라 하루 보내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다.


노노는 그 흔한 학습지와 학원을 단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아이다.

학교에서 수업만 열심히 듣고, 집에 오면 게임과 유튜브 세상에 사는 아이.

성적은 중간 정도 되고 수행평가는 만점이 나오는 것 보니 학교생활도 성실한 것 같다고 추측을 하고 있다.

학부모 상담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추측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과거에도 내가 하는 일은 아파도 병원을 갈 수 없는 그런 일이기에 더군다나 선생님과의 상담은 꿈도 꿔볼 수 조차 없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날에는 그림을 그리고 기타와 피아노, 칼리버 연주는 유튜브를 통해 독학을 했다.

공부하고 싶은 날은 없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노노.

친구들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언제라도 가능한 노노에게 전화를 하고 그들은 온라인에서 만나 신나게 즐긴다.


"친구들하고 만나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막 뛰면서 놀았으면 좋겠어."

"엄마, 요즘 누가 밖에 나가서 놀아? 옛날에 농구나 축구하면서 놀던 걸 요즘은 온라인에서 게임하면서 노는 거야. 나가서 노는 애들이 있겠지만 많지 않을걸?"

"코로나 끝나면 운동을 해보는 건 어때?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지 않아?"

"난 움직이는 거 싫어. 운동은 힘들거든."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상대는 반발합니다.
-마흔에게 223p-

기시미 이치로의 말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때 가지고 놀던 놀잇감을 찾아 놀던 아이가 퍼즐을 사달라고 했다.

어릴적 놀던 놀잇감이 재등장한 요즘

"퍼즐이 아무렇게나 연결해도 다 맞아 엄마. 신기하지?" 하며 보여준 퍼즐의 가격이 13만 원.

난 가격을 보자마자 사줄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길어진 잔소리.

"내가 그동안 돈을 안 썼으니 이 정도는 사도 된다고 생각해."
"돈 안 쓴걸 그런 거 사는데 쓰면 아깝지 않아?"

"이게 주문이 될지 모르겠어. 해외에서만 파는 걸 수 있거든."

"잘 됐네. 이 기회에 해외 직구로 사는 거 해봐. 모르면 단어 찾아가면서 해보면 되겠다."

오호라~안 사주려는 내 마음에 딱 맞는 핑곗거리가 등장했지만, 네가 시도해보지 않아 못 산 거라는 먹잇감이 등장했으니 내가 그걸 놓칠 일 없었다.

"아냐! 됐어."

말끝을 흐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아들이 컴퓨터가 안된다며 다시 내게 왔고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단 한 번도 큰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기승전 돈과 꿈으로 연결이 되었다.

아이는 끝내 “돈이 아까워”라는 말을 하며 한 방울 눈물을 떨구고 뒤돌아 섰다.


아이는 차비 이외에 돈을 쓰지 않는다. 급할 때 쓰라고 중학교 입학 당시 준 체크카드의 잔고도 그대로이다. 친구들이 먹을 때 너도 먹고 싶을 텐데 사서 먹으라는 말에 돈이 아깝다며 눈물을 흘리는 중3 아이의 마음은 어떤 걸까? 거기서 참았어야 했는데, 아니면 내가 아이의 방으로 갔어야 했는데 아이를 불렀다.

세 번만에 다시 내방을 찾은 아이와 네가 하고 싶은 일, 마이스터고로의 진학,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하니 엇나가기만 했다. 거기에다 정말 인천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물었으니 불난 곳에 부채질하는 겪이 되었다.


"점수에 맞는 대학을 가면 되고 운 좋게 전공이 나랑 맞을 수도 있으니 잘될 수도 있지 않냐"고하는 아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왜 꿈을 찾아야 하는지 네 방에 놓아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나는 네가 감히 나를 이기려 해? 하는 이기적인 어른이었다.

“책만 읽으면 되는 거지? 책 읽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들어도 딴말하면 안 돼.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등수 말해줘. 그 등수까지 올려놓을게. ”

이어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대표인 형*이 삼촌과, 아이의 외삼촌인 헌*이 삼촌도 공부 잘했냐고 묻는 아이에게 난 진실을 말해버렸다. 둘 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었다는 금기어를.

(형*이는 말할 거 없고 내 동생도 정말 잘 산다.)


점수에 맞춰 강원도의 대학에 가서 농업을 전공하고, 감자밭을 사서 소비자와 직거래를 시도해 사업을 확장해 갔다는 어느 사업가의 기사를 아침에 읽었던 나. 그런 요행이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았다.


"최저임금 받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엄마가 최저임금 받아서 너랑 둘이 사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냐"라고 물으니 맞다고 대답하는 아이 앞에서 이제는 내가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우리에겐 작은 집과 차가 있고 빚이 없어서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엄마가 보여준 작은 세상이 최저임금만큼의 세상이라 미안했고 화가 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는 자기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라 했다. 그 감정을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정말 놀잇감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고 한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와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의 어린 시절.

내게는 안 맞는 옷을 걸친 것만 같았던 그 어색함이 오늘은 그립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물질적으로 넉넉했던 그 5년간의 시간이 아이에게는 인생의 시작이었으니 세상이 좁아 보이는 건 당연한 걸까?


노력해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최저임금의 노동자의 아들이 꿈꾸는 세상도 최저임금이라니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는 아이의 우주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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