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2 주만나 큐티

낮아져야 높아진다

by 싸비

누가복음 18:9-17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내용 요약


9-14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가 있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하였고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셨습니다.


15-17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 주시기를 바라며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관찰 질문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까?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예수님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리새인, 세리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하나님께 “나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나는 금식하고 십일조도 드립니다.”하고 기도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기도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 중 누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리)이 의롭다 하셨다.


세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시길 바라며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어떤 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


연구와 묵상 질문


바리새인과 세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의를 드러냈고 세리는 자기 자신만을 놓고 죄인이라 여기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다.


연구와 묵상


18:9-14 바리새인과 세리. 바로 앞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 비유 역시 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더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두 기도는 두 가지 유형의 인물을 다룬다. 바리새인은 경건한 사람으로 정직하고 고결한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율법이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이 행했다. 율법은 일 년에 단 한 차례 대속죄일에 금식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한 주에 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 금식했다. 그는 요구된 부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수입에서 십일조를 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할 때 잘 보이는 곳에 ‘따로 섰다.’ 그는 자신의 경건을 뽐냈다(그의 기도는 모두 ‘나’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웃을 경멸하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리는 성전의 지성소에서 아주 멀찍이 섰다. 감히 눈을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악을 고백했고, 하나님의 자비를 호소했다. 예수님의 판결은 그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서 집으로 갔으나, 바리새인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보다’(14절)는 너무 약한 번역이다. ‘저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따라서 이 비유는 사회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다. 하나님은 불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를 때 언제나 그들을 받아 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실천과 선행으로 교만해져서 자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귀를 닫으신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선하고 좋은 의도를 가진 바리새인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을 모두 한 통속으로 몰아서 정죄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그려진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 기도와 매우 비슷한 기도가 유대 자료 가운데 전해진다.


18:15-17 예수님과 어린 아이들(마 19:13-15; 막 10:13-16을 보라). 누가만이 어린아이(children)를 ‘어린 아기’(baby)이라고 일컫는다. ‘만져 주다’는 말은 예쑤님이 아기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복을 비는 기도를 하셨음을 함축한다. 마가복음에서 그 이야기의 요점은 하나님 나라가 그같은 자들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예수님이 아이들을 자신의 품에 안아 주신 일로 강조된다. 누가는 이 장면을 생략한다. 이는 누가가 이를 기록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수용적인 마음으로 그 나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참고 18:14)는 교훈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 15절. 마가복음에는 병행 구절이 없는 긴 항목(9:51-18:!4)이 끝난 후 누가는 다시 이 복음서와 나란히 진행시킨다. 16절.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어린아이 같은 자를 위한 것이다.


출처: IVP 성경주석 신약


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이 비유에서는 자기 의를 자랑하는 한 바리새인과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한 세리를 대조한다.


18:9 누가는 또다시 1절에서와 같이 비유 그 자체를 제시하기 전에 그 비유를 해석한다. 자기를 의롭다 믿고……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의 대상이 된 청중(아마도 바리새인)은 자기 가치에 대한 비현실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마 5:20 해설을 보라). 그들은 자기 의에 대한 잘못된 확신을 품고 다른 사람을 멸시했다.


18:10 두 사람(참조, 15:!1, 17:34~35) 이 성전에 올라가니.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이라도 성전까지는 ‘올라’가야 하며 거기서부터는 ‘내려’가야 한다(18:14를 보라). 성전은 높은 산 위에 위치해 있었고 예루살렘의 나머지 지역은 그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성전에 대해서는 요 2:14 해설을 보라). 바리새인, 눅 5:17 해설을 보라. 세리. 3:!2~14와 마 5:46~47의 해설을 보라.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보통의 기도 자세 하나님이여 나는……감사하나이다. 이 구절에 나오는 다섯 번의 ‘나’는 이 바리새인의 자기중심성을 드러낸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는 대신 거만하게 자신의 도덕적 순결함과 종교적 경건에 대해 하나님께 자랑한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구약의 율법은 이런 잦은 금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금식을 요구했다(마 6:!6~18 해설을 보라). 소득의 십일조. 수확의 십일조를 요구하는 신 14:22~27을 보라. 레 27:30~32; 민 18:21~24도 함께 보라.


18:13 세리는 부끄러움 때문에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이는 슬픔과 통회의 표시였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했다. “죄인의 기도”(참조, 시 51:1)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죄인의 통회와 바리새인의 자기 의의 극명한 대조는 이 비유의 핵심적 요점을 이해하는 열쇠다.


18:!4 예수님은 일반적인 예상에 대한 충격적인 반전을 선포하신다(참조, 14:!1 및 서론의 “핵심 주제”). 바리새인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고(18:9) 자기를 옳게 보이려 애썼지만(참조, 16:15) 세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18:15~17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심 어린 아이들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즉, 축복해 주기를 바라고. 참조, 5:!3, 6:19) 자기 어린 아기를 데려왔다. 데리고 오매. 이 표현은 이 일이 예수님의 사역에서 자주 있었던 일임을 암시한다.


18:16~17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어린 아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태도는 유대교의 다른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와 상당히 대조되었다. 대부분의 고대 문화에서 아이들은 가족에게 보탬이 될 만큼 육체적으로 강해지기 전까지는 부담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는 어린 아이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 즉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의 것이라는 뜻이다(막 10:13~15 해설을 보라. 참조, 마 18:4). 어린 아이와 같이. 즉, 예수님에 대한 어린 아이 같은 믿음과 신뢰로.


출처: ESV 스터디 바이블


느낀 점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 이미 어린 아이 시절을 훌쩍 지났기 때문에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가 우주에서 왔다고 믿고 UFO를 기다렸던 시간이나 네스호에 살고 있는 네스를 믿었다거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기를 기다렸던 그런 시절이 떠오른다.


결단과 적용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완성하는 동안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스며들게 하시기를 바라며 글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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