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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사고 후 환불 지연과 연락 두절된 인쇄소와 담판을 짓기 위해 소보원에 신고했는데...
https://brunch.co.kr/@5-mori/37
소보원 신고는 기각됐다. 사업자끼리는 구제 대상이 아니고, 법률 조언을 구하라고 하더라.
이제 나는 법적 조치를 검토해야 했다.
그전에 책이 몇 권이 불량인지를 확인하고, 불량 난 책을 반품부터해야 했다.
하나하나 책을 보는 게 말이 쉽지, 표지만 엉망이면 또 쉽지.
하다 보니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양이 아니고. 애초에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다.
옆에서 깨작깨작 도와주던 아빠도 그냥 다 보내버리라고 이걸 어떻게 하냐고 훈수를 뒀다.
아예 없던 일 하자는 마음으로, 전부 보낸다고 통보했다.
다음날 아침
신고를 한다 해도 묵묵부답 연락두절이었던 인쇄소가 드디어 연락이 왔다.
무려 전화 씩이나 주셨다.
인쇄소는 전부 보내지 말고 30% 환불하고 서로 좋게 끝내자고 했다. 자기도 스트레스받는다고.
아무래도 전부 보내는 게 인쇄소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되나 보지?
40% 환불해준다고 했으면서 30%로 말 바꾼 것도 괘씸하고,
지금까지 연락 두절된 스트레스도 있어서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나도 스트레스받는다고, 40% 보낼 때까지 연락하고 전화하고 찾아갈 거라고..
왜 말 바뀌냐.. 불량 한두 개가 아니다.. 약속 지켜라.. 울분에 차서 얘기하니 또 뚝 끊어버렸다. ㅎㅎ..
그리고 내 전화는 또 받지 않는다.
다시 내 전화를 안 받기 시작해서, 옆에 있던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했다. 또 안 받는다.
한 시간쯤 뒤에 전화해야겠다 싶어서 외주 들어온 일이나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들어오더니 입금됐을 거라고 확인해보라고 한다 (???)
진짜 입금이 됐고 나는 기쁘다기보단 허무하고 찜찜했다.
이런 일 하나 혼자 해결하지 못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가 대신 환불받아주는 건 좀.
나의 독립성과 주체성은 무엇인가.
이렇게 금방 될 거였는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와 아빠의 통화는 무엇이 달랐나.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거의 짜증을 내며 물어봤다. 어떻게 한 건데.
아빠는 늘 그랬듯 자신만만. 일장연설을 늘여놨고 나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기록해야겠다.
1. 감정에 호소 - 우선 마음을 풀어둔다..
당신도 자식이 있지 않냐, 처음으로 뭐 좀 해보려고 하는데 일정도 못 지키고, 책은 엉망이라 쓰지도 못하고. 당신도 자식이 이러면 당연히 마음이 안 좋지 않냐...
이런 식으로 처음에 밑밥을 깔았다고 한다. 나는 좀 구리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저런 말에 상당히 약했다. (연봉협상할 때 회사가 성장을 많이 못했고.. 힘든 상황이고.. 이번에는 어렵지만 다음에는 꼭.. 이런 류)
2. 자신감 - 내 잘못이면 돈 안 받을게. 대신
인쇄소는 한결같이 "불량이 그렇게 많을 수 없다. 40% 환불은 과도하다"라고 주장했다.
1,000권 다 보낼 테니까 직접 보시라고, 진짜 한두권 불량이면 환불 안 받고 돈 날린 샘 치겠다고 했다(내돈인디요). 대신 불량 난 책 사진은 다 찍어놨다고. 보냈는데 실제로도 불량 많으면 그때는 반품도 했겠다,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 법적으로 물건 보냈으니 고소 진행할 수 있고, 소액 재판은 해보니 얼마 안 걸리더라, 라며 해본 척도 하고.
+ 나도 사업하는데 오죽하면 이러겠냐. 직접 봐야된다, 라며 강조하고.
뭐 이런저런 말이 오간 것 같으나
당사자 없이 해결되다 보니 영문도 모른 채 해결됐다.
협상이란 무엇인가. 나는 뭐가 달랐길래 해결을 못 했나.
무턱대고 돈 달라고 우긴다기보단 책 보낸다고 강하게 얘기했어야 됐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게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는 하는데.
이 거친 세상 여전한 개복치는 찜찜하게 떠다닌다 둥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