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식탁_겨울

손만두

by 양양

손만두를 빚어먹었다.

틀니를 끼고도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이 불편할 만큼 쇠약해진 외할아버지도 손만두는 자연스럽게 집어 드셨다. 손만두는 정말 오랜만이다, 하며 엄마와 같이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을 묻히고 속을 넣은 뒤 이쁘게 접어 빚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먹는 손만두다. 손만두라고 하며 파는 만둣집들이 있지만 나는 만두(또 김밥도)는 집에서 직접 만들지 않으면 손만두 맛을 느끼지 못하는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다. 아마 생전 외할머니의 만두 때문이겠지. 직접 반죽하고 밀대로 반죽을 밀어 만들지 않으면 손만두로 쳐주지 않은, 음식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는 요리사.(할머니는 아마도 우리가 빚은 만두의 만두피가 시장에서 사 온 것이라 손만두라 쳐주지 않을 수도 있다.) 외할머니가 편찮으신 뒤로 직접 만든 만두와 할머니만의 김밥은 맛볼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에 관한 추억을 음식으로 떠올리곤 했는데 할머니의 장례를 끝내고 할머니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가는 길에 외삼촌이 '할머니가 해준 음식 중에 어떤 게 제일 먹고 싶니?'라고 물었고 나는 할머니 댁에 가면 늘 먹었던 떡볶이와 김밥을 떠올렸다. 외삼촌이 그 김밥은 특별했다고 '너도 먹어봤구나'하며 할머니를 떠올렸다. 이렇게 할머니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음식과 관련된 추억이 끼어들었다. 여기서 할머니의 김밥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데, 할머니의 김밥은 일단 밥에서부터 시작한다. 음식을 할 땐 재료 하나라도 맛이 없거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굳건한 철학 아래, 할머니는 김밥을 하기 가장 좋은 적당히 윤기 나며 고슬고슬한 밥을 지었고 김밥을 씹을 때의 식감을 위한 것인지 김밥의 단면의 색을 곱게 하기 위한 것인지 당근을 아주 가늘게 채 썰고 다져서 깨소금보다 작게 만들어 적당히 간을 해서 볶아낸 뒤 식혀서 김밥에 넣을 밥에 섞었다. 그 덕에 김밥의 단면은 먹기 아깝도록 고왔고 적당히 볶아진 당근이 김밥의 포인트 식감이 되었다. 그 뒤 다양한 김밥 재료를 직접 만들고 간을 하고 볶은 뒤 이쁘게 말아주었다. 같이 여름휴가를 가거나 드라이브를 갈 때만 되면 은박포일에 이쁘게 포장된 자르지 않은 김밥이 있었고 한입 베어 물면 할머니의 시그니처 김밥을 입으로 한입 눈으로 한컷 맛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기억 속에 음식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그 정성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을 당연스레 여겼지만, 할머니의 부재는 곧 그 눈물 나도록 그리운 음식의 부재이기도 해서 그 음식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가 손만두 빚은 이야기를 하자면 만두를 120개 정도를 빚었는데 2시간은 훌쩍 넘겼다. 만두 속을 만드는 시간과 찌는 시간을 빼고 빚는 시간만 꼬박 2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할머니가 만두를 만들었을 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었을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 남매의 가족들이 먹을 만큼의 만두 양이면 어마어마했을 텐데. 할머니는 일단 밀가루 대용량을 시장에서 사 와 물을 넣고 반죽해서 적당한 찰기가 생길 때까지 외할아버지와 돌아가며 손으로 직접 반죽한 뒤 따뜻한 온수매트 위에서 숙성시키고 만두피는 얇지만, 만두가 터지지는 않을 만큼의 두께로 밀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 모든 과정의 결과인 만두를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만두 속에는 무엇이 들어갔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 맛본 만두의 맛을 떠올리며 기억을 되살려보면 당면과 두부, 물에 헹군 김장 김치와 고기 등이 들어갔을 것이다. 속을 만들면서도 반죽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할아버지에게 열심히 반죽하라는 잔소리를 아마도 한마디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두소의 맛이 할머니가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지면 거실에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만두피에 속을 넣고 만두를 이쁘게 빚었을 것이다. 한 쟁반에 수북하게 만두가 올라가면 찜기에 쪄내고 또 한 쟁반씩 채워지고의 반복. 만두를 충분히 만들면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주들의 집 문고리에 걸어놓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한다. 갑자기 찾아온 것이 행여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주말에는 아직 늦잠을 자고 있을 아침에, 평일에는 한창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동이 막 튼 새벽에 그렇게 문고리에 무거운 비닐봉지를 걸어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만두를 빚는다는 건 노부부에게는 그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외할머니는 나를, 우리 모두를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사실에는 티끌만큼의 의심도 없다. 사랑. 그 단어가 매우 쑥스러운 듯 할머니 할아버지는 말 대신 음식이라는 노동으로 사랑을 한없이 표현했다는 것.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음식도 맛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만두를 빚으면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보냈을 시간을 느낀다. 얼마만큼의 사랑이 있어야 하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냥 손만두가 아닌 사이좋게 주름진 손이 빚은 사랑과 정성을 받아먹고 자랐구나,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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