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일상에서 나는 할머니가 행복을 누리고 주던 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라는데 무서운 것이 늘고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겠지. 그러므로 어른이 되어갈수록 행복한 것과 인생을 사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행복과 인생이 어렵다고 느낄수록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가 나에게 주었던 영향이 이렇게 컸구나, 새삼 느끼게 되고 할머니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올리게 된다.
할머니의 고민거리는 삼시세끼 뭐를 해 먹을까였다. 물론 할머니도 할머니 나름대로 손주들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노인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생활도 열심히 했다. 이것은 나중에 할머니 얼굴에 난 큰 상처를 보게 된 이후로 알게 되었는데 그 상처는 꽤 깊었지만 꽤 오래 전의 상처인 것 같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운 할머니댁을 방문한 지 두 달 여가 지났었는데 할머니가 계속 일하기 위해 담당자 아주머니에게 참외 한 봉지를 손에 들려주려 실랑이를 하다가 넘어져 얼굴이 크게 쓸렸던 일이 있었다. 그 상처가 난 지 한 달이 훨씬 넘고 딱지도 어느 정도 아물게 되었을 때 할머니가 다쳤던 것을 알게 되었다. 꽤 오래된 몇 년 전의 일인데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내 마음에는 아직 딱지도 앉지 않은 듯 익숙해지지 않는 쓰라림이 매번 동반되었다. 할머니도 할머니 나름대로의 걱정과 고민거리가 많았겠구나 하고 나중이 되어서야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손주들이 방문할 때는 이따 점심은 혹은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할까를 입에 달고 살았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큰 고민은 식구들의 삼시세끼 메뉴라는 데에 있구나 하고 당연히 여겼었다. 할머니의 메뉴는 계절별로 달라졌는데 추운 겨울에는 손만두와 만둣국, 수제비, 얼음을 동동 띄운 식혜. 따뜻한 봄이 오면 여러 가지 제철 재료로 만든 나물 무침. 여름에는 냉면과 콩국수. 가을에는 딱히 정해진 음식이 없었던 것 같지만 가을비가 촉촉하게 공기를 적실 때면 김치전과 해물파전을 내오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놀러 가는 날이면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떡볶이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나오는 나만의 단골메뉴였다. 매번 이런 메뉴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식탁을 차릴 때 반찬이나 국을 어떤 걸 해야 할까 하며 할머니는 머리를 싸맸다.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냥 대충 있는 반찬으로 먹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꼭 메뉴를 두어 가지 더 만들었다. 식사시간에 할머니가 차려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 할머니의 부재는 그 행복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게 만들었다. 행복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그 행복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그때의 행복이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할머니의 행복은 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걸 먹는 자녀들과 손주들의 얼굴 표정을 음미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할머니의 행복에 무임승차해 그 행복을 나눠가지고 배까지 불렀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를 더 생각하게 되었고 더 깊이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이별은 너무 힘들지만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가 보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이 울렁이지만 또 마음 한켠에서는 할머니의 모습을 곰곰이 그려보고 그 유쾌한 삶의 자세와 우리를 사랑했던 그 마음이 떠올라 마음 가득 따뜻해짐을 느낀다. 이제는 경험할 수 없겠지만 할머니와 할머니의 음식은 내 속에 끝까지 오래오래 남아 쉽지 않은 인생을 살다가 힘이 들 때면 잠시 쉬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어줄 것이다.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람과 추억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며. 보낼수만 있다면 할머니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