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기술인가, 아니면 관계인가?

주절주절

by 이지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에게
행운과 행복은 같은 자리에 서 있지 않다.
행운은 바깥에서 온다.
예고 없이 찾아오고, 이유 없이 떠난다.
부와 명예, 성공과 건강은 삶을 덜 거칠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머무는 동안에만 웃을 수 있다면
그 웃음은 이미 운명의 인질이 된다.

세네카가 말하는 행복은
주어진 것을 붙잡는 데 있지 않다.
빼앗길 수 없는 것,
운명이 손댈 수 없는 것,
자기 안에서 훈련된 이성과 덕,
외부의 흔들림에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평정.
행복은 잘 풀린 삶이 아니라
잘 견디는 영혼의 상태다.

썩 괜찮아 보이는 관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 잘 견디는 자체가
미션임파서블인 게 있다.

욥기는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욥은 행운을 잃은 사람이 아니다.
의로움이 있었고, 신실함이 있었고,
이유 없이 무너졌다. (언듯 보면 농락당하는 것 같기도...)
마음의 훈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욥은 평정을 지키는 현자가 아니다.
그는 무너진 채로 울부짖는다.
침묵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 채 질문한다.
행복을 유지하지 못한 실패자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여는 인간이다.

세네카의 행복이
운명을 넘어선 자율의 성취라면,
욥기의 자리는
운명도, 이성도, 설명도 사라진 후에 남는
관계의 마지막 지점이다.
욥기는 말한다.
행복은 지켜내는 기술이 아니라
다 잃은 뒤에도
하나님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자리라고.

행운이 사라진 후에도
말을 멈추지 않고,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관계를 끊지 않는 그 자리에
인간의 진실이 남아 있다고.
철학은 평정을 말하고,
성경은 남아 있음에 대해 말한다.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
그 자리가
행운을 넘어서는 이야기고
행복을 초월하는 이야기고
신앙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