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세상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우리는 기원을 묻고 원인을 찾고 설명을 붙이려 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처음부터 설명을 포기합니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이미 어떤 것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홀로 있으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고요. 멈추지 않고 두루 움직이며 만물을 낳고 길러내는 어떤 리듬이 있었다고요.
노자는 그것의 이름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도’라 부르고, 억지로 ‘크다’고 부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크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크기'가 아닙니다. 더 세고, 더 높고, 더 많은 것이 아닙니다. 노자가 말하는 '크다'는 움직임입니다. 가고, 멀리 미치고,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순환이 노자가 말한 ‘대(大)’입니다. 머무르지 않고, 정체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크기. 그래서 도는 크고, 하늘도 크며, 땅도 크고, 사람도 그 안에 자리합니다. 심지어 왕도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자는 권력을 위로 올리지 않습니다. 리듬 안에 놓습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습니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며, 제때 가고 제때 돌아오는 것입니다.
노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통제나 지배가 아니라 이 순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도는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근원적 리듬입니다. 빛과 어둠, 생과 사, 앞섬과 물러남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하나의 운동을 이루는 자리.
그래서 도는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흐름입니다. ‘크다’는 것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 리듬을 한 사람의 삶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오셨고, 세상 가운데로 깊이 미치셨으며, 십자가를 지나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가고, 미치고, 돌아오는 길.
노자가 말한 순환의 리듬은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사랑의 리듬이 됩니다. 붙잡지 않고, 쌓아 두지 않고, 다시 흘려보내는 삶. 받고, 나누고, 되돌려주는 사랑. 그것이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크다는 것은 머무는 힘이 아니라 돌아올 줄 아는 힘입니다. 그 순환 속에 생명이 있고, 관계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크다는 것은 멀어지고, 미치고,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머무르지 않는 그 흐름 속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