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낼수록 흐려지고
비울수록 길어집니다

스물네 번째 이야기

by 이지

사람은 앞서고 싶어 합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눈에 띄게. 그래서 발끝으로 서고, 보폭을 무리하게 늘립니다. 처음엔 시선을 얻습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는 말자.” 여유를 남겨 두어야 다시 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노자는 아주 비슷한 말을 이미 오래전에 했습니다. 발끝으로 서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무리하게 걷는 자는 멀리 가지 못한다고. 드러냄은 순간을 밝히지만, 지속성을 약하게 만듭니다. 자기 의로움, 자기 확신, 자기 자랑은 처음엔 단단해 보이지만 시간 앞에서는 쉽게 흐려집니다.

노자는 이 모든 것을 단호한 이미지로 잘라냅니다.

“남은 밥, 군더더기.”

먹고 남은 밥처럼 필요 이상으로 남은 것, 몸에 붙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것.

도에 선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도는 힘주는 방향이 아니라 리듬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빠르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 흐름, 높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 발끝이 아니라 발바닥 전체로 서는 삶, 과속이 아니라 호흡이 맞는 걸음.

겸손은 자신을 줄이는 태도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입니다. 자기과시는 타인의 시선을 연료로 삼습니다. 그래서 시선이 끊기면 곧 고갈됩니다. 그러나 절제는 내적 리듬을 연료로 삼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오래 갑니다.

노자가 말하는 ‘덜어냄’은 패배가 아닙니다.불필요한 힘을 빼는 일, 지속되지 못할 속도를 내려놓는 일, 그래서 다시 길어지는 삶입니다.

복음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경건을 경계하셨습니다. 은밀한 자리에서 이미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말합니다.

비교와 과시는 신앙을 키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크기를 보지 않으십니다. 중심을 보십니다. 속도도, 자리도, 그릇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도와 복음이 만나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드러내려 애쓰지 않을 때 오히려 밝아지고, 자랑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남으며, 자만을 버릴 때 삶은 길어집니다.

보여 주는 힘이 아니라 견디는 리듬. 그것이 도가 가르치는 길이고, 복음이 초대하는 삶입니다.

사유의 한마디

빛나려 애쓸수록 빛은 멀어집니다. 덜어낼수록 가벼워지고, 비워낼수록 삶은 오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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