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적을수록 자연에 가까워집니다

스물세 번째 이야기

by 이지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하고, 그 시선이 사라지면 마음이 조금씩 흔들립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말을 이 흔들림을 붙잡기 위해 합니다. 괜찮다고 말하고, 옳다고 설명하고, 이해받고 싶어 자꾸 덧붙입니다.

그러나 노자는 조용히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말이 거의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이 말은 침묵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통하고 있는 상태, 억지로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머물 수 있는 자리, 그것을 가리킵니다.

세상은 말이 넘쳐납니다.자신을 증명하려는 말, 옳음을 주장하는 말, 비교하고 설득하는 말들이 서로를 점점 피곤하게 만듭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분주해지고, 진심은 오히려 더 멀어집니다.

노자는 자연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갑작스러운 비도 하루 종일 내리지 않습니다. 요란한 것은 늘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조차 한결같이 머물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말과 감정이 어찌 늘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를 닮아가고, 그 흐름 안에 머문다고.

말로 붙잡으려 하지 않고, 신뢰 속에 자신을 맡기는 삶.

말이 적다는 것은 침묵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신뢰입니다. 노자가 말한 ‘희언(希言)’은 억제된 침묵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해석이 줄어든 상태, 비교와 평가가 빠져나간 마음, 그 맑음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로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서,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받을 것 같아서. 그러나 말이 많아질수록 확신은 약해지고, 설명이 길어질수록 진실은 멀어집니다.

노자는 외부의 시선에 자신을 맡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늘과 땅의 리듬, 존재의 흐름, 도에 자신을 맞추어 살라고 말합니다. 그 흐름 속에서는 말이 줄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예수님의 말도 늘 단순했습니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그분은 많은 말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설명하기보다 그 뜻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신뢰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증언도 말이 아니라 머무름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분을 설명하기보다 조금씩 닮아갑니다. 신앙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신뢰를 유지하는 힘입니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믿음이 부족할 때 불신은 생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세상의 인정 욕구는 늘 마음을 흔듭니다. 그러나 신뢰가 자리 잡을 때, 말은 줄고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자연처럼, 도처럼, 설명 없이도 존재하는 삶으로.


사유의 한마디

말이 적을수록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고요함 속에서 진실은 자라고, 믿음은 설명이 아니라 신뢰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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